비 오고 흐린 날로 시작한 유월. 벌써 뜨거워 땡볕 아래 서면 신음성이 절로 난다. 몇해 전 이맘때쯤, 웃으면 눈이 초승달처럼 곱게 감기는 숲님과 왔었지. 저 아랫동네와 다르게 푸르며 청량한 기운으로 가득한 북한산 계곡. 바위 어림쯤 자리잡아 차를 마시고, 담소도 나누며 한나절 계곡 물에 발을 담궈 휘젓지 않았던가. 가만, 그러고 보니 그 전 장 소장과도 찾아왔었다. 웅장한 바윗덩어리인 노적봉과 백운대 아래, 위압감을 주는 만경대도 저만큼 볼 수 있는 자리. 더욱 솔깃한 건 계곡을 덮은 아름드리 산딸나무가 그야말로 꽃을 만개시켜 세상을 밝히는 곳이다.
산딸나무 새하얀 꽃은 초록 나뭇잎에 얹혀, 바람 불면 날아오를 듯 하늘거려 보는 이를 즐겁게 만든다.
산딸나무는 마주보기로 붙어 있는 꽃이 수백수천 개로 핀다. 청순한 느낌을 주는 꽃은 사실 잎이 변형된 포엽(苞葉)이다.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못 박힐 때 쓰인 십자가가 산딸나무였다고 한다. 당시 산딸나무는 지금보다 재질이 단단했으며, 예루살렘 지역에서 가장 큰 나무였다. 두 장씩 마주 보는 산딸나무 꽃잎은 그야말로 십자가를 연상케 한다. 그런 때문인지 여러 유럽 기독교 국가와 미국에서는 정원수로 널리 심는다. '미국산딸나무', '꽃산딸나무', '서양산딸나무' 등 여러 종류가 우리 나라에 들어와 있다.
중부 이남에서 주로 자라지만 지금은 남한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가을에 열리는 동그란 열매가 부드럽고 달아 먹을 만하여 과일주를 담그기도 한다. 열매가 딸기와 비슷하게 생겨 '산딸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