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없이 갇혔다. 셋이 한자리에 앉아 있으면 눈총을 받았다. 커피라도 한잔하려고 들어가면 방문등록부터 해야 하니. 그래도 가을은 소리소문 없이 자리잡았다. 혼자 산기슭을 오르는데 '톡'이 들어온다.
'오늘 혼자 문경세재에 왔쑤. 근데 헐, 대박!'
'호젓하니 좋겠네요. 어떤 일이 그리 즐겁게 하오?'
'여그 삼관문 휴게소 아줌마가 날 알아보네. 가죽나물부침개도 입에 쫘악~ 달라붙고.'
십년은 되지 않았을까. 장 소장과 둘이 문경세재에 간 적 있다. 초여름 사과꽃이 피었다. 양봉벌이 없는지, 부지런한 농부가 과수원에서 일일이 인공으로 꽃가루를 옮기고 있었다. 점심때도 지나 쉬엄쉬엄 오른 발걸음에 무언가 아쉽다. 삼관문에서 술을 한잔 기울이다가 넌지시 던졌다.
"여기서 자고 내일 갑시다."
"그럼 나도 자야겠네."
"내일은 부봉으로 올라가봐야겠는데."
마침 낙조에 무리 없어 보였는지 합석한 주인 아줌마에게 부탁한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에 삼관문까지 우리를 데려다 준 아줌마에게 감사한 적 있다. 그렇게 한번 스친 얼굴을 알아보다니.
이후 다른 일행과 몇 번 문경세재에 들른 적이 있었어도 삼관문까지 올라가기엔 시간도 촉박하고 걸음이 길어 포기했다.
"인제 기필코 거기까지 올라가야겠네."
혼잣말인데, 옆에서 묻는다.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생각을 떠올리기만 해도 무심코 말이 되어 나오는 시대. 혼자이기만을 강요하는 때여서일까. 이런저런 사연을 얘기하자 아이가 웃는다.
"망부석 아줌마네. 누군가가 오기를 마냥 기다리다니."
"그래도 가 봅시다."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다는데 망설일 수 없다. 원대리도 돌아오고, 수산리도 다녀오고, 가을 깊은 수 개의 산길을 걸은 다음 장 소장과 조 선생까지 합세하여 우리는 문경으로 갔다. 여유만만하게 떠나 만행을 즐기기. 작정한 대로 가는 길에 맛있다고 소문난 사과 '감홍'도 사고, 새재길을 오르는 동안 점점 조바심이 났다.
"그 아줌마가 나를 알아보는지 내가 먼저 올라가 보겄소."
"가서 먼저 말하면 안됩니다."
"하하, 그야 당근!"
해가 비스듬히 넘어가는 즈음 나는 먼 길을 걸어온 과객처럼 주막집을 보고 섰다. 이만하면 되었어. 숨도 차분하고, 옷차림도 흩뜨러지지 않았으니. 돌계단을 조심스레 올랐다. 장작 태우는 연기 속에 맛있는 부침개 냄새가 풍긴다. 헌데, 저 이는 누구일까? 자리를 권하는 남자 손길을 따라 배낭을 내린 다음 안을 기웃거린다. 어둑한 내부에서 허리를 굽히고 부엌일에 열중하는 아낙네 모습을 보았다. 아, 저 분 이름이 생각났어. 이제 음식을 시켜 그 맛을 보면 예전 그때로 돌아갈거야. 우선 막걸리부터. 그 즈음 일행도 도착해 합석했다.
"여기 기억나네. 부봉 가는 길이 이쪽있었나 저쪽이었나? 안부쯤에서 올라치는 암릉길이 대단했는데."
그러다가 이까지 달려온 계기를 기억해냈다. 마침 입맛에 맞는 밑반찬 핑게를 대고 빈 접시를 들고 휴게소 안으로 들어갔다. 비낀 햇빛에 고개 든 아주머니가 얼굴 가득 웃음을 띤다.
"오랜만입니다. 더 멋있어지신 것 같아요."
Fariborz Lachini, Desire To St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