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미워하기. 미워하기 시작하면 마음속 날이 세워져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속이 좁았나, 스스로를 다스릴 수 없을 정도라니. 어이가 없어 자책하다가도 끝내 이를 갈았다. 표적을 정하고 미워하는 저주를 날리는 것은 나에 대한 폐단이며 영혼을 갉아먹는, 죽어야만 끊어질 수 있는 나쁜 행태이다.
모임에서 우연히 짝이 된 후배가 있었다. 단지 나와 이어졌을 뿐이지 별 상관없는 사람이어서 관계가 중요치 않았다. 그러다보니 별도로 이야기를 나눌 만한 계제도 없다. 모임을 파하고 돌아온 다음에 맡겨 둔 내 소유물이 생각났다. 문자로 '나중 기회가 되면 그걸 달라' 고 요청했는데, 며칠간 아무 대꾸 없더니 전혀 모르는 이처럼 문자를 보낸다. '기억이 없으니 문자를 보내지 말라'고. 중요한 물건은 아니지만 상대에게 이리 무시당할 만한 행위도 없었기에, 이러저러한 저간의 사정을 설명한 문자를 다시 보냈다. 사과 한마디라든지, '그렇냐!' 고 수긍하는 대꾸라도 받았으면 좋았을 걸. 저녁 늦게 대뜸 걸려온 상대 전화를 받았더니, 내 물건을 돌려주겠다는 얘기는 없이 엉뚱한 얘기들을 줄줄 늘어놓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막았다. '사족 같은 얘기는 그치고....' 라고 한 순간 쌍욕을 뱉어내더니 없는 사실을 부풀려 인신공격성 발언을 줄줄 쏟아놓는다. 어안이 벙벙해 대꾸도 못한 순간 이해할 수 없는 얘기들만 하더니 뚝! 전화를 끊는다.
이런! 못볼 것을 본 것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 귀를 털어내고 가슴을 쓰다듬었지만 진정되지 않는다. 행사를 진행한 몇몇과 그 녀석과 관계된 몇몇 이들에게 문자캡쳐를 보내고 조언을 구했다. 새삼 사람을 알 필요야 없지만 그렇다고 아는 이를 미워할 필요도 없는데 말야. 기억목록에서 녀석을 잘라내 버렸다.
하지만 자다가도 가끔 이 더러운 녀석과 막돼먹은 언행이 떠올라 허공에 주먹을 내휘둘렀다.
곧다른 행사가 있어 그 모임에 갔다. 나를 피해 다니는지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사정을 얼추 짐작하는 몇몇에게 사과를 받았지만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해가 지났을 무렵 우연히 엉뚱한 곳에서 그 녀석을 만났지만 본척만척 지나쳤다. 가만, 헌데 왜 저 녀석이 여기 있지. 고개를 갸웃거린 찰나 또 다른 유사모임으로 얽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징하긴 징해. 한번 더 보면 닭살이 돋을 것만 같아. 누군가와 한담을 하는 중에 슬쩍 눈치를 보며 지나치는 녀석을 보았다. 이를 갈며 혼잣말을 했다.
'내 기억에 너 같은 녀석은 절대 없어.'
몇 개월이 지난 다음 모임에 들어가는 중에 누군가 목례를 보낸다. 어둑하기도 했지만 찬바람에 눈물이 흘러 미처 닦아내지 못한 참이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습관적으로 인사를 건네고는 아연해졌다. 억, 이 녀석이 왜 저기서 나를 기다려? 애써 작정한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다짐과는 다르게 인사를 건네다니. 미쳤어? 머리를 흔들다가는 눈가 흘러내린 눈물을 꾹꾹 찍어냈다. 그래,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몰라. 저 녀석을 미워하고서는 웬지 모르게 뾰족한 자신이 참을 수 없었지.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게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왜 진작 몰랐을까.
Chris de Burgh, When winter co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