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걸음에 붙여서

*garden 2009. 1. 8. 17:44



한 여자가 죽었다.
말을 나누면 주저하는 법이 없었지. 달콤한 목소리로 향기나는 언어를 싫증나지 않게 엮어내던 입은 닫혔고, 초롱한 눈망울은 감겼으며, 꽃다운 얼굴이 경직되어 상큼하고도 아름다운 미소를 이제 떠올리지 않는다.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그렇게 즐기던 수영장에 다니러 갔다가 소리없이 물 위에 떠올랐다는 것이다. 꼭 쥔 손아귀로 쥐려 한 것이 삶인지, 죽음인지 확인할 수 없이. 절차에 따라 답답한 고무 주머니를 열고 검시를 한 의사는 아무리 들여다 봐도 해득해 낼 수 없는 물기어린 글씨로 그 맺음을 확인하였고, 이를 대신한 경찰은 산 물고기처럼 퍼덕이던 빛나는 삶을 심근경색이라는 말로 끝낸다.
사람들을 솎아내 텅 빈, 염소 냄새만 폴폴 오르던 풀에서 산란된 물빛 고리들이 바닥을 촘촘히 메꾼 사각의 푸른 타일 위에서 흔들리며 천장을 비추던 오후를 떠올린다.


차마 소리내 슬픔을 표현하지 못한 남편은 아름다웠던 아내의 마지막 길을 떠올리려고 애쓴다.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챙겨야지. 그런데 필요한 게 무언지 알 수 있어야지. 뭘 해 줄까? 혼잣말로 물어 놓고서는 아차 한다. 대답이 있을 리도 없는데. 하기사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 번도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었네. 늘 물건을 찾지 못해 끙끙거리면 기특하게도 찾아내 내밀던 아내가 아니던가. 가슴 저린 기억만 남아 함께 가겠구나. 챙겨야 할 것은 묻지 않아도 주변에서들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당신의 임종을 진작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누운 자리에서 고개만 돌리고 소곤거렸다.
혹시 말이다.
.........
나 죽거든 비싼 수의 사다 입히려 하덜 말고 가장 싼 걸로 입혀다고.
그게 뭔 말씀이세요?
진작에 어른들 돌아가셨을 적에 행편이 안좋아 싼 수의만 마련해 묻어 드렸잖어. 나중에라도 무덤을 열었을 때 내만 번듯한 수의를 입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나중을 생각하다 보니 걱정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문중 묘소들을 누가 일일이 찾아내 돌봐줄 리도 만무하고. 상의 끝에 요즘 회자되는 납골당을 꾸미기로 했다. 날을 받아 예를 차리고는 산 허리부터 확인해 가며 묘를 열고 시신들을 꺼냈다. 직접 할 수야 없지만 다른이에게 맡길 사안도 아니다. 인부들을 독려하여 서두른다. 오늘 어느 정도야 마쳐야지. 생전의 모습을 그릴라고는 하지만 용이치 않다. 세상에 내가 수습해야 할 주검이 어찌 이리 많은가.
가장 나중 아내의 묘를 열었다. 봐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수없이 되뇌이며 무심코 눈길을 주었다간 경악한다. 채 썩지 않은 백골이 어찌 저리 흉할까. 곱디 고운 모습만으로 생각나는 내 아내. 저게 내 탓인 것만 같아 면구스럽기 짝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도 재정 상태야 나쁘지 않았기에 수의를 가장 최상급으로 해달란 기억이 있는데, 삭지도 않은 나일론 같은 천이 저리도 너펄거리며 휘감겨 있다니. 인부들이 혀를 찬다. 이곳 수습을 하기보다는 당장에라도 예전 수의를 팔았던 곳을 찾아내 박살을 내러 달려가고만 싶으니. 흙과 물기에 범벅이 되어 하잘 것 없는 거적데기가 되어 버린 속에서 그나마 어금니를 금니로 해 넣었던 표식이 간신히 아내인 것을 떠올리게 해 줄 뿐이었다. 다른 어른들처럼 곱게 삭아 헤어지는 수의가 아니라는 것을 당시에 왜 알지 못했단 말인가.
화장을 하고 유골을 담는데, 그 때마다 안쪽에서 물어본다.
갈아 드릴까요?
고개를 끄덕이며 응락하다가 아내 차례가 되어서는 기어이 제지를 하고 말았다. 그예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어찌 아프게 바스러뜨리기까지 할 수야 있을라구.













Nostalgia * Masaji Watanabe




'不平則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늘 이 길에  (0) 2009.01.25
바람소리  (0) 2009.01.15
겨울손님  (0) 2009.01.06
해넘이재에서  (0) 2008.12.30
언제까지나  (0) 2004.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