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바람소리

*garden 2009. 1. 15. 12:11





날카롭고 뾰족한 바람. 잘 드는 칼날처럼 살갗을 저미고 포를 뜨다가 송곳처럼 쑤셔대기도 한다. 부산스러움은 또 감당하기 어렵다. 잠시도 한자리에 머무는 법 없어 세상 곳곳을 쑤썩이며 돌아다녔다. 지하철로 바쁘게 달려가는 이들 옷자락을 휘감아 오르기도 하고, 보도 한켠에 모여 옹송거리는 메마른 낙엽을 말아올리다가 눈에 티를 집어넣어 껌벅거리는 수고를 끼치게도 하더니, 키 작은 사람 사는 세상엔 내려오지 않고 구름 자국 희끗한 허공에서만 윙윙거리기도 한다. 어떤 이는 바람을 따라 떠나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리고는 시름시름 앓아 누웠다.


이번에 많이 앓았다면서요?
자기 자리에 가장 일찌감치 앉아 있는 사람. 그런 적이 없었는데, 갸름하며 단아한 얼굴이 핼쓱하다. 그래서 더욱 마음을 기울이게 하는지 모르지만. 겨울 한가운데에 드러누워 바람을 떠나 보낸 손은 메마르고 차가웠다.
혼자 힘들었겠군요. 이참에 결혼이라도 하지, 그래!
그러게요. 이번에 그렇지 않아도.


생각 가지가 얼마나 벋는지, 앓아 누운 중에 자르고 또 잘라도 자른 자리에서 또 가지가 나 촘촘하게 하늘을 덮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고 했다. 혼자 누워 열에 달떠 지새는 밤이 무서웠다니. 어느 날 아침에 손전화가 오길래 무심코 받았더니 금방 달려와선 차를 대고 올라오더라나. 환한 꽃다발을 내미는 데 말간 눈물을 뚝 떨어뜨렸노라고. 웃으라고 건넨 농담이 진담이 된다.


밤 늦게 얼쩡거리다가 찾아 온 후배 녀석. 내내 미적미적하더니 술김에 내비치는 말.
아무래도 안되겠지요?
몇 번이나 시도했건만 끄덕 없더라나. 숱한 잽을 날려도 호리호리한 몸 어디 그리 강단이 있는지. 나중에는 자기가 지친다면서 괴로움을 토로한다. 허긴 순정한 그 모습을 누군들 좋아하지 않을 수 있나.
누구나 새끼발가락에는 보이지 않는 빨간실이 매어져 있다고 했다. 실의 다른 매듭은 인연이 되는 다른 사람의 새끼발가락에 매어져 있어, 얽힌 매듭 끝을 찾기도 어렵고 잘못 찾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아, 이 사람이구나 하다가도 고개를 흔들며 실망하고 지치기도 하고 그렇게 여러 사랑을 만나고, 또 헤어진댔지. 사실은 자신도 모르게 얽혀있는 실을 풀어가면서 조금씩 커가고 성숙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했다. 나중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 인연의 앞에 서기 위해.
두 사람이 나란히 선 모습을 그려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그렇다고 매정하게 끊기도 어렵다.
연이야 지금이 아니라도 나중 깨닫고 돌아와 이어지기도 한다잖아.


그렇게 숱한 시간을 당당하게 혼자 버티던 이가 오늘 아침 문득 반려자를 생각한다니. 이런저런 말 끝에 주변에서는 다들 이구동성으로 말린다고 했다. 말을 꺼낸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얘, 너가 인물이 없니, 아니면 돈이 없어. 누구 좋으라고 이제까지 혼자 잘 지내왔는데 간다는 게냐. 그냥 지금처럼 지내도 사람들 떠받듦을 받으며 살 수 있을 텐데 말야.
말이 말을 부르고 쫓고 쫓기다가 몸집을 불리며 어깨에 얹혀지기도 한다. 허긴 나도 이제까지 옆에 잘 있던 노처녀, 그도 인형처럼 참한 이가 떠난다니 슬프다. 눈을 들어 바람이 지치는 허공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도 하다. 하지만 기침을 하고 말을 끊었다.
자, 그만 합시다. 이 사람이 지금 잠자리가 필요하거나 남자가 그리워 결혼을 하겠다는 건 아니잖아요. 같이 자고 아침에 일어나 마주 보며 웃고 함께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고 같은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좋아하는 영화를 함께 관람하고 어깨동무해서 걸어갈 사람이 필요하다는데.
누구나 가슴에 드는 한기를 참을 재간은 점점 없다.











Missin you * Mar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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