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해넘이재에서

*garden 2008. 12. 30. 11:33



한참 되었지. 들여다 볼 적마다 정지된 로봇처럼 고정되어 있는 동작이. 책장을 넘기지도 않은 채 펴둔 걸 보며 결국 한소리 한다.
"야, 이 녀석아, 글줄도 안읽으며 뭔 생각이 그리 많냐?"
촛점없이 회색 허공에서 까무룩하던 눈이 허둥지둥한다.
"이리 나와. 가까운 산에라도 올라가 볼래?"
"아니에요. 친구하고 약속이 있어서요."
책을 덮으며 부산해진 움직임이 영 불안하다. 게임에만 몰두하여 두문불출하는 걸 보며,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분 못하여 혹여 사회성이라도 결여되면 어떡할까 싶어 염려하다가 다행히도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는 말에 끄덕이지만 되짚어 보면 그래도 걱정스럽긴 매한가지다. 나갔다 하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이니 일일이 쫓아다니며 간섭할 수도 없고, 나중 아이를 꿇어앉힌 채 꼬치꼬치 캐물어 방향타를 점검하기란 더욱 어렵다.
그런 녀석이 입대하더니 편지를 보냈다. 허겁지겁 찾아 읽는 내용 중 한 문장에 저으기 마음이 놓인다. '옆 동기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란 대목에.
엉뚱하게 씨름하는 동안 제 오빠와는 달리 하루 해가 짧다며 바깥으로만 나돌던 둘째 녀석이, 인제 방과 후면 제까닥 들어와 집 안에만 들어박혀 있다. 식구 하나 빠진 난자리가 만만찮아 당황하던 차에 그나마 나머지 아이라도 쉬이 대면할 수 있으니 좋기야 하다만, 괜시리 힐끔거리다가 넌지시 묻는다. '용돈 없니, 줄까?' 늘 용돈이 적다고 투덜대 반색할 줄 알았는데, 고개만 흔든다. 혹시 모르는 낌새라도 알아챌까 싶어 진지하게 접근전을 시도한다. 근데 대답이 생뚱맞다. '요즘 돈 쓸 일이 없다'나. 철없이 제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유행을 좇아 옷이나 사 입을 줄 알았는데, 닥친 입시며 주변 분위기가 저도 숨을 못쉬겠지. 나름대로 가라앉히고서 큰 흐름에 스스로를 용해시켜 따를 방법이라도 배운걸까.


세상이 손바닥 안에 든 것처럼 만만한 줄 알았는데. 도자처럼 세사가 원하는 대로 빚어질리야 만무하여 되어지는 모양새를 보노라면 생각과 달리 전혀 엉뚱한 형태가 쫓아나와서는 갸웃거리게 만드는 건가. 아니면 감각이 전과 달라 당연한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가.
또 한 고개를 넘어가는 중이다. 저마다의 이별이나 만남을 스쳐 보내거나 겪으며 한해 동안 기꺼운 찬사나 감동의 동작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일은 없었던가. 쫓을 걸 쫓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거나 전혀 아닌 곳에 닿아 마음을 어지럽힌 적은 없었던지, 겨우내 숨어든 물길을 트서는 더듬어봐야겠다. 살아도 살아도 알 수 없는 게 사는 일이어서.












Avec Tes Yeux * Don & Cl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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