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달이 대밭 속으로 들어갔다

*garden 2004. 5. 17. 17:47





근원을 알 수 없어도 바람은 세상 곳곳에 있다.
종종걸음하는 허기진 아이들과 발걸음을 섞었다. 아이들 말간 살갗이 까칠해졌다. 온종일 씨름한 바람과 섞여, 아이들은 누운 콩 줄기를 쑤셔 쭉정이를 뒤진다.

휘파람 소리, 어디서 새가 운다. 허공을 지치는 소리를 듣고 바람이 더듬어간다. 들의 공허함을 쓸어간다. 메마른 손길을 따라 철모르는 메뚜기가 마구 뛴다. 몸짓을 의지해 까닭없이 들이 출렁거린다.

호젓한 밭둑 바스러지는 잡풀을 쓰다듬다가, 한 마장 건너 감쪽같이 숨어들어서는 넉넉한 대청 서까래에 우두커니 머물기도 한다. 큼지막한 댓돌 아래 가지런한 고무신을 기웃거릴 때면, 심심해져서 나는 멀리 산을 향해 길게 소리를 질렀다.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하루가 버무려진 삶과 죽음이 뒤엉켰다. 타닥거리며 제 몸을 태우는 아궁이 삭정이 사이에 있더니, 어느새 스스로를 잊어가는 미루나무 꼭대기에도 아슬하게 올라간다.

잎도 없이 말갛게 익은 감마다 부딪치다가는 별이 내리는 대나무 밭에서 심하게 몸부림을 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달빛마저 까마득하게 기절했다.

댓잎이 마구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머니는 다락에서 祭器를 들어냈다. 밤새 지푸라기를 뭉친 수세미에 잿물을 묻혀서 닦고 또 닦았다. 빨리 자라는 호통에도 아랑곳 않은 채 나는, 감은 척 말똥거리며 어둠이 까맣게 뭉칠 때까지 뒤척였다.

달이 대밭에 들어간 지 스무 해歲가 지나서야 알았다. 그것이 어머니가 외로움을 잊었던 오직 하나의 방편이었다는 것을.
오늘 밤 화분의 돌을 쏟고 다시 蘭을 세운다. 소들히 선 자세가 마땅찮은게지. 돌을 하나마다 가려서 크기대로 켜켜로 재우면서 밤이 드러눕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대밭으로 숨은 달을 깨우러 가는 바람을 본다.
그 날 그 바람일까!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Varsog * Sigmund Groven(Harmonica ins.)


'不平則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소리  (0) 2009.01.15
걸음에 붙여서  (0) 2009.01.08
겨울손님  (0) 2009.01.06
해넘이재에서  (0) 2008.12.30
언제까지나  (0) 2004.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