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늘 이 길에

*garden 2009. 1. 25. 07:38



길을 잃었다. 지나온 길이 낯설어 그대로 가면 안될 것처럼 혼란스럽다. 아무나 붙잡고 물어 볼 참인데, 황량한 바람만 오가는 읍 구석 어디 인적이 있어야 말이지. 단층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키재기를 하는 곳. 블록 담 허물어진 틈에 지난 여름 무성하던 호박 넝쿨이 질긴 섬유질만 걸치고 사그라졌는데, 저만큼 난삽한 소리가 있어 보니 덩그레한 입간판 한구석이 깨져 떨걱댄다. 누군가 구세주처럼 어른거려 화색을 짓다가는 저으기 실망한다. 별 수 없지.
할머니, 할머니. 소리를 높이며 몇 번이나 부르자 구부러진 허리를 펴 이편을 보길래 주춤주춤 갔다가 당황스럽다. 어디를 보는지 눈이 무심해선. 여기서..... 하고 운을 떼는데 응, 응 하며 귀를 세우는 할머니. 금방 고개를 흔든다. 난 몰러. 말이 연기처럼 뭉글뭉글 쫓아나와 더러는 패인 아스팔트 위에 떨어졌다. 잇몸만 보이는 중간에 겨우 두서너 개 남은 이가 애처롭다.
그 멸실된 이처럼 듬성듬성한 기억이라니. 정류장에서 시장통을 지나는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 소방도로를 대여섯 개 지나친 다음 공터가 보일 즈음 길을 꺾어 들면 파란나무 대문이 있던 집이었던가. 군복을 입고 나왔을 때, 갑자기 기운 가세로 쫓기듯 나앉은 집에 지금 나보다 더 젊고 예쁜 어머니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부엌에서 내다보던데. 지금은 떠올리려고 해도 어렴풋하니 안개에 둘러쌓인 것처럼 그 집으로 가는 길이 떠오르지 않으니.


이맘때면 늘 겪는 귀성전쟁. 막히면 돌아가야지. 소위 손바닥에 길이 있다는 치의 능변인데. 글쎄, 돌아가다가 나중에야말로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이 갇혀 버릴까봐 걱정이다. 경우야 다를 수 있지만, 그래도 한 우물을 파야 한다고 늘상 되뇌던 어른.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하며 경망스레 쫓아다니거나 방방 뛰지 말랬지. 빡빡하게 움직이다 보니 바로 가는 길, 큰 길이 그래도 나을까 싶어 이용하는 고속도로. 특별한 날이나 명절때면 주차장이기 일쑤이니. 톨게이트를 들어서기도 전에 가다서다를 반복하다 보면 지레 지쳐 후회막급이다.
그래도 가야지 싶은 마음으로 거뜬히 헤치고 달려가던 뚝심. 열댓 시간을 꾸역꾸역 가서는 차례만 지내고서는 마신 퇴주가 깨기도 전에 서둘러 올라온 기억. 하나씩 늘어나는 식구를 자랑처럼 달고 가던 길. 어느 해에는 휴게소 바깥에 차를 대고 들어간 사람들 때문에 지나기가 고역이다. 결국 휴게소에 들를 엄두도 못내는 데 아이들이 힘들다. 뒤에서 볼일이 급한 꼬마 표정이 심상치 않다. 감히 차를 세워 달라고 하지 못해서. 새벽녘까지 꼬리에 꼬리를 문 행렬 불빛을 보며 고향 문전 휴게소에 차를 댄다. 눈이라도 붙이고 갈 참이었는데 내쳐 자 버렸다. 나중 비가 내리는데, 마악 쫓아다니기 시작한 작은녀석이 깨워 겨우 일어나기도 했다. 가고 오는 게 표나지 않아도 식구들을 확인하는 이정표였는데. 그나마도 하나둘 어른이 빠지거나 뜨면서 다니러 가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다. 물론 손가락에 꼽자면 이유가 한둘이 아니지만. 동생들이 조심스레 전화를 낸다.
다음 주에 시제가 있습니다만. 이번 명절엔 어떠신지요?


뉴스를 틀면 쫓아나오는 소리. 올해에는 정체가 일찍 시작된다고. 명절 앞 휴일이 길고 뒤가 짧기 때문이다. 더구나 폭설과 추위 소식이 겹쳐 있으니, 돌아오는 길이 만만치 않을 게다. 그래도 다녀오는 게 낫겠지. 예전처럼 정겨움이 봄날 제비새끼처럼 와글거리지야 않겠지만, 명색이 해의 분수령이니 코를 쥐고 들이키는 한약처럼 눈 따악 감고 달려가야겠지.
걸어온 길이 어지럽다. 흔적을 더듬으면 겹친 발자국도 보이고, 눈물겹게 돌아온 날도 생각나고, 마음 푸근하게 떼던 걸음도 있지만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앞으로 걸어갈 길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겠지.














Loving You * Oscar Lop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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