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우화등선

*garden 2009. 2. 9. 12:21



소통이 안되면 답답하다. 갇힌 줄도 모르고 갇혀 있어야 한다면 얼마나 암담할까.
소리를 낸다. 여보세요! 누구 없나요? 억지로 크게 불러본다. 여보세요! 격리된 공간. 저 혼자 웅웅대던 소리. 꼬리가 맥없이 사그라드는 것을 보면 차츰 무섭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다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수반된다. 견갑골 아래가 가려워도 꼼짤달싹할 수 있어야지. 공동 안에서 공간 구분마저 전혀 되지 않아 아무런 대책을 강구할 수 없는 데에서 오는 무력감에 절망한다.
자기공명영상 Magnetic Resonance Imagine 검사를 하던 기사들이 통 안에 환자를 둔 채 깜박하고 그냥 식사를 하러 나갔대나. 이야기를 듣는 순간 협소하고 밀폐된 공간에 내가 든 듯 아찔하다.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날 정도로.


병문안을 갔더니 침대가 병실 앞에 나와 있다. 방사선 치료를 위해 이동하는 중이다. 덕분에 이런저런 기기를 접하게 되었다. 일면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유용한 기계들이 어쩌면 그렇게 우리와 동떨어져 보일까. 쇠냄새를 감춘 인정머리 없는 것들. 거기 머리나 환부를 고정하고선 방사선을 쪼여야 하는 모습을 떠올리자 영 편안하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좀 전에 한바탕 전쟁을 치룬 모양이다. MRI 검사가 예정 시간을 훨씬 초과되었다기에 무슨 말인가 했더니, 공명통 안이 답답하여 버둥대고 소리치며 거부하는 바람에 다시 찍고 또 찍는 일을 되풀이했다나. 오분이면 끝날 촬영이 이십분을 넘겼다고 한다. 기계를 보자 공감이 간다. 고삐 없는 바람처럼, 소원을 실어 날리는 풍등처럼 그렇게 자유롭고 싶은 몸을 묶어 놓았으니 오죽했을까. 날개가 돋은 마음은 창천을 솟구쳐도 불편한 육신은 돌아눕기도 힘들다.
제가 도와 드릴게요.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옮기는 데 뼈가 잡히는 몸이 새처럼 가볍다.
쾌유하시려면 불편함을 견디기도 하셔야지요.
그래두 난 싫여. 또 통에 집어 넣는다면 집에 갈 거여.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오지만 애초 대우를 바라기는 글렀다. 생 살을 찢고 호스를 꽂을 때 끙끙 참으면 그만 할 줄 알았지. 두개골에 철심을 박고 영화에서나 봄직한 기기를 설치하질 않나. 웬 검사는 그리 많을까. 바늘을 열두 대나 꽂았다간 뽑아 인제 침 꽂을 자리조차 찾기 힘든데, 그러면서도 오가는 누구 하나 속시원히 경과를 설명해주지 않으니. 저번 병원에서 했던 검사와 똑같은 검사를 다시 한다. 자료를 듬성듬성하게 찍어 활용할 수 없다면서. 입을 삐죽거린다.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는 푸념에 수긍이 간다.
죽음이 미학처럼 여겨지던 환한 오후 나절 문득 죽어버리고 싶단 생각을 떠올린 적이 있다. 변함없이 오가는 계절, 한 계절이 끝나면 당연히 바뀌어야 할 계절이 어떤 때에는 흔적이 묘연하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말간 창에 이마를 짓찧었다. 갇힌 통 안보다 더 암담한 세상, 울고 싶지도 않다. 꼬무락대며 배추벌레처럼 기어가야 하나. 발이 닳아 몸으로라도 버둥거리면 아주 오랜 뒤 나갈 수야 있겠지. 허나 그 우화의 문이 무의미하다. 의식을 놓아버린 다음에야 어둔 땅 속인들 어떠랴. 친구 녀석은 술만 들면 흔들리는 백열등 그림자 지는 벽에 싯구를 적어 놓았다. 꽤나 논하고 벌컥거리며 체한 삶을 어쩌지 못해 발작기를 보이기도 하더니, 밤새 눈이 키만큼 쌓였다간 아침해가 뜨자 말끔히 사라진 날, 담장 위로 고개 내민 목련 꽃눈이 단단하게 속을 채우는 것을 보며 몇 날 며칠 약국을 돌아 사 모은 수면제를 삼십여 알이나 삼켜 버렸다. 살고 죽는 게 참 아무것도 아니다.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그 간극을 뛰어넘기 어렵겠지.









Walking In The Air * George Win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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