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달팽이 시간 묻기

*garden 2009. 2. 13. 14:32









꿈이 어찌나 요란스럽던지 얼떨떨하다. 굼뜬 자세로 있는데, 와글거리는 모닝벨. 가 보니, 아이는 잠결에 소음을 지우지 못해 더듬거리기만 한다. 대신 정지 버튼을 눌러 준다. 잠은 시공이 구분되지 않는 일차원인지, 아님 사차원의 세계인지. 지금 우리 아이는 과연 어디에 머물러 있는 걸까.
에스에프SF 영화에 등장하는 이른바 시간여행자들. 전율하게 만드는 희대의 사건 언저리에 언뜻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주말 극장프로를 고르듯 사건파일을 뒤적여 오늘은 몇년몇월며칠 사건으로 가야지 하면서 달려오지 않았을까. 주관적이지 못한 성향의 소심주의자들. 방관자로 머물러 있어도 좋은 볼거리를 놓칠 수야 없다. 공간에 따라 다른 시간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이건 공상이 아니다.


물끄러미 보낸 오후 한나절. 철학적 의문이 하나둘 머리를 쳐들더니 우후죽순처럼 자라 숲을 만든다. 숲 한쪽 언저리에서 눈을 떴다. 결핍으로 점철된 내게 시간만은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고 눈에 보이게끔 또박또박 밀려 다가왔다가 머물고 스쳐 지나는 시간들.
몇 해가 지날 때까지 그렇게 시간을 들여다 볼 수 없게 되었다. 영혼을 응시하는 일이 얼마나 사치인가를 생각했기에. 대신 일에 매진한다. 책상에 앉으면 눈을 부릅뜨고 글자의 열을 맞춘 다음 그 내면을 응시한다. 사무실 계단을 두세 칸씩 껑충껑충 뛰어 오르내린다. 사람들이 바쁜 나를 위하여 길을 비켜준다. 눈을 마주칠 새도 없이 지나쳤다. 일은 하면 할수록 산더미처럼 쌓였다. 틈이 생기면 주저앉기보다 육신을 혹사시킨다. 기대보다 잘 적응하는 튼튼하고 빠른 내 몸이 대견했다. 여기저기 쑤썩거리며 다니는 일정과 산행으로 빼곡히 채운 일상. 여행을 떠나기 전의 나와 목적지에 닿아서의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 아득한 산정을 올려다 보면 틀림없이 다른 공간이며 다른 시간의 지배하에 들어 있다.
산행은 늘 조심해야 한다. 첩첩인 암릉과 암릉을 넘어 미끄러운 바위를 딛고 가야 하는 험로. 땀 배인 손으로 바위 흠을 잡고 구절양장의 능선을 더듬을 때마다 맞는 바람. 트인 세상을 내려다보며 비로소 외로움을 떠올렸다. 지난 길이 어떠했던가. 들머리에서 치고 오르며 서릿발 내린 푸썩한 길에서 간절한 기도를 떠올렸지. 여명에 엉킨 산 속 거미줄 같은 시간을 헤치던 때의 거친 숨결. 마침내 드러나던 정경. 어스름에 묵묵히 떼던 걸음. 발 아래 감기던 다복솔한 감촉. 소박한 오솔길이 숨어드는 숲을 보며 보폭을 줄이고 싶었지. 부지런한 새가 꿍얼거리거나 기지개를 켠 다음 쭈볏쭈볏 날아다니는 행색을 더듬었다. 어느 날엔가 들꽃이 하나씩 솟구쳐 오르는 정경을 꿈꾸며 봄날 아지랑이같은 미소를 떠올렸다. 아쉬움은 커지고 갈증은 심해졌다. 아이처럼 나는 다른 세상에 도달할 수 없이 어쩌지 못하고 지나쳐 버렸다. 세상에 외롭지 않은 존재가 어디 있으랴. 종일 사투를 벌이고 난 다음의 일몰은 가련했다.







Innocense * Nikos Ignatia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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