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마당

겨울에게 바라노니

*garden 2009. 2. 18. 10:39



굳이 마음에 의지의 심줄을 휘둘리지 않아도 몸은 제가 알아서 움직이곤 했다. 습관이 지배하는 일상. 인지하지 않아도 조종할 정도이니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가. 허나 거추장스러운 때도 있다. 행해 온 대로 사고하고 판단하며 나아가고 행동하는 일련의 과정들. 가장 합리적이라 여기며 무심코 내린 판단이 삐끗하여 탄식도 한다. 자아를 세울 때부터 길들여져 온 습관. 강화와 반복을 통한 조장으로 인제는 배인 몸짓들. 가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습관이 나를 망치는 건 아닐까. 시골 광을 열면 보이는 깨진 단지들이나 먼지 덮어 쓴 멍석, 새끼줄 들. 나중 크게 소용되리라 여긴 게 실은 보잘것 없어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인데, 그걸 버리지 못해 버틴다면. 할머니는 신주 모시듯 해도 결국 다 버리고선 떠나왔다. 강요하거나 몰입하며 집착하여 해석하는 그런 류의 습관에서 벗어나는 게 상책인 데 말이야.


서늘한 베란다에서 견디던 난이 대를 올린다. 처음에는 촉을 늘이는 건가 했는데 아니다. 어느 날 아침에 날렵한 꽃을 줄줄이 피워냈으니. 꽃이 줄기에서 솟은 게 아니고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린 듯 그렇게 걸려 있다. 들여다 볼 적마다 흐뭇하다. 좋은 일이 생기겠구나, 마음속으로만 간직했는데. 좋은 일은 커녕 주변은 내가 모르는 새 난장이다. 그렇지 않아도 줄타기를 하듯 아슬하게 보였지. 아이가 방학이라 종일 얼굴을 맞대면 웃을 일만 생길까. 집안에 병치레를 하는 사람이 있다 보니 산만하다. 병원에도 왔다갔다 하는지라 그런가 보다 했지. 와중에도 일상은 일상대로 지탱해야 하고. 나중에 보니 으레껏 가는 학교 보충수업에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나. 급기야 제 엄마는 주변 친구들이 문제라 판단한다. 우선 아이와 어울리는 친구를 수소문하여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고를 가름한다. 나중에는 일일히 전화까지 해댄다. 이러저러한 일로 당분간은 우리 아이와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나중 입시를 치른 다음에 만나도 되겠지? 응답과 확약까지 비밀리에 한 일을 개중 하나가 고자질한다.
이 녀석이 집을 나가 버렸다. 그 참에 용틀임이라도 하듯 바람 불고 강성해진 겨울이 활개를 친다. 쉬쉬 하는 동안 비도 내리고 어느 곳에서는 눈도 날리고 얼음장도 꽝꽝 얼어 더 두터워졌다. 얇은 옷차림으로 나간 게 애시당초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침 이 녀석 생일을 맞아서는 큰 애가 휴가를 받아 왔다. 근데 주인공이 없으니. 어찌어찌해서 간신히 연락은 되었는데 고집불통이다. 오죽하면 학교 담임 선생이 혀를 내두르더라나. 가만히 두면 잘 하는 아이인데, 한 번 야단 치면 옥황상제 할애비라도 못다스린다고. 아니나 다를까, 이건 엄마가 자기 친구들에게 일일히 사과를 해야만 돌아올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대나. 기가 센 여자 아이를 받아들여 주는 풍토여야 하는데 말이지. 어느 때 빌미를 잡아 고집을 꺾어야 할 텐데.
슬그머니 남녘 화신도 들린다. 오는 봄을 반기기보다 아직은 겨울 한자락을 붙잡고 있을려는 게 습관에서 기인하는 건가.












Bluse of Elise * Wolf Hoff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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