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길의 부재

*garden 2009. 5. 21. 17:20




아따, 꿈도 드럽네. 똥통에 빠져 허우적대다 깼으니.
이른 시각이어서 여편네가 희번득 눈을 흘기고선 입을 삐죽 내민다.
에그, 하나뿐인 우리 남편 날쌀로 잃을뻔 했네. 나라도 얼릉 부르지 그랬소?
물론 불렀지. 아무리 소리쳐도 안오길래 고갤 뺐더니 님자도 옆 똥통에서 허적대고 있더만.
가만, 꿈은 반대로 풀랬는데 그 똥이 혹 돈을 기약허지 않을래나.
내맘이 그맘 아녀. 제발 어디서 돈벼락이라도 맞아 부리능게 소원이네.
돈 열리는 나무라도 어디 없을까. 매양 입에 풀칠이나 하자고 이리 뛰고 저리 박는 꼴이라니. 그나저나 오늘도 한바탕해야겠지. 간신히 고속도로 휴게소를 하나 꿰차고 앉았다. 차떼기로 들이밀었는데, 당최 시끄러워서 말씨. 아, 저그 해먹는 거허고 내 해먹는 기 엄연히 다른데 왜 못쫓아내서 안달이야. 통속들을 모이라고 해야지. 대책을 강구해야 돼야.
휴게소 측 단속은 집요하다. 안방에 좌판을 펴는데 누가 놔둘손가. 노상 장사치들이야 호구지책이라, 가스통을 안고 터뜨리겠다며 결사적이다. 결국 절충안을 낸다. 휴게소에서 파는 물품과 겹쳐 팔지 않는 것으로. 그러다 보니 휴게소에서는 식사나 편의점 용품 위주인 데 비해 사람들은 아이들 성화에 따라 쉬운 먹거리부터 찾아 쥐어준다. 자연히 노상에서 취급하는 게 일견 비위생적이기는 해도 유리하다.
내가 안풀리는 것도 분통 터지는 노릇이지만 상대가 잘풀린다면 이는 더욱 두고 볼 수 없는 일. 떠돌이 장사치들이 개발한, 맥반석오징어구이, 감자튀김, 어묵 등에서부터 호두과자라든지 등속을 휴게소에서 빼앗다시피 갖고 간다. 대신 이쪽에서는 운전용품이라든지 때마침 일기 시작한 바람에 편승한 등산용품 등을 다룬다.
그래도 그 때 한 밑천 벌었지. 개중 효자상품은 뭐니뭐니해도 번데기였다. 자루째 사 온 번데기를 퍼다 뒤적이면 오가는 이들마다 코를 실룩거렸다. 아이들이 칭얼대면 별 수 없지. 순식간에 줄이 댓발씩 늘어지기 일쑤였는데, 돈 받고 종이컵에 퍼주면 되얐지. 웬 천 원짜리가 그리 많은지. 집에 오면 졸음을 참고 세다세다 못세구선, 다음 날이면 다시 득달같이 쫓아나갔으니. 나중엔 꼬깃꼬깃한 돈을 자루에 꾹꾹 담아 장롱에도 쳐박아 두고 냉장고 안에도 넣어 뒀지. 번데기만으로 일 년에 이삼 억 너끈히 벌었을 걸. 인제 그런 호시절이야 쩝쩝.
돈을 쌓아두면 굳을 줄 알았는데 천만에, 한달음에 날아가곤 했다. 그래서 다들 돈을 쫓는다. 또 다른 이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쌍심지를 돋우고 곳곳에 말뚝을 박고 다녔다. 어떤 이는 자기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해 목에 핏대를 세웠다. 찢어지지도 않는 유포지에 이름을 금박으로 새겨서는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굽신거리며 돌렸다. 지금이야 이래도 나중 너희들 위에 군림할지니. 두툼한 입술에 욕심이 많아 쥐고도 내놓지 않던 어른들을 떠올린다. 나야 그 덕에 돈이야 있어. 이름이나 세워야지.


미처 봄을 만끽하기도 전에 여름이 왔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내려앉아 몸을 찌부둥하게 만든다. 밤낮 없이 와글거리는 사람들. 나중에는 그게 그거였지만 그래도 눈을 부릅뜨고 아귀처럼 먹을 거리를 찾아다닌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르는 건물은 예전보다 커져 규모를 헤아리기 어렵다. 많은 사람이 입주해 살기 때문에 곳곳에 규제를 둔다. 스피커로 이십사 시간 쫑알대는 규칙들을 자라는 아이들은 하도 들어 무심코 입에 달고 다녔다. 사람들이 죄다 몰린 통에 도시는 허기진 아이처럼 주변을 야금야금 먹어 덩치를 키웠다.
참, 이상하지. 사람들끼리 모여 살면서 왜 그리도 외로운지. 채워도 채워지지 않고 마셔도 지워지지 않는 갈증이라니. 봄날에 우화한 나비는 종종 길을 잃고 지하철 환승구로 들어왔다. 꽃 향기나 밀원의 꿈보다는 텁텁한 먼지 가득한 속에 지린내가 진동한다. 길을 잘못 든 순간부터 보장되지 않는 삶. 오염막을 투과한 햇살은 부옇게 굴절하여 숲으로 가는 길을 아지랑이로 막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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