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얼뜨기 걸음

*garden 2009. 5. 27. 15:07



각본이 탄탄한, 그래서 손에 땀을 쥐며 본 영화가 불현듯 끝났을 때의 아쉬움이란. 처음부터 다시 볼 수는 없고 별수없이 일어선다. 훤한 햇살에 눈을 뜰 수 없다. 영화관 안팎이 전혀 다른 세상이니. 그 판국에 덜컥 거울 앞에 서면 한숨부터 난다. 영화 속 멋진 주인공인양 우쭐하다가 마주친 못난이로 낭패감이 들어.
그런 기분과 별반 다를 게 없어 혀를 찬다. 이렇게 거울 앞에서 서성인 적이 없었는데. 다름 아니라 가운데 머리카락이 막 성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잘 못보았나 싶어 맞거울을 비치며 몇 번이나 확인한다. 언제 이리 빠졌지? 밖에서 식구들이 성화를 부려 서둘러 세면을 마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삼는 일과. 이른 시각에 출근하고 다른 사람 퇴근한 후에 나오는 일이 인제 버겁다. 잡음 없이 지내려니 하여도 늘 이렇게 쫓기다니. 전동차 기척이 있길래 습관적으로 조바심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비집고 들어서니 마침 앞자리가 비었다. 앉긴 앉았는데 먼저 자리잡은 양쪽 비둔한 몸이 침범해 있는 통에 비좁다. 엉거주춤 등을 곧추세우려니 영 불편하다. 엉덩이를 비비적거리자 졸던 옆자리 처녀가 실눈을 뜨며 미간을 좁히는 바람에 찔끔한다. 퇴근길이어서 나른한데 또 다른 역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오른다. 움직이는 전동차, 덜컹거림이 귀에 익기 시작하는 와중에 빠른 템포의 컬러링이 이어진다. 이윽고 손전화기를 꺼내든 아주머니, 누가 듣든 말든 기차 화통을 삶아 든 것처럼 우직한 소리를 따발총처럼 지르기 시작한다. 덩달아 두어 자리 건너 입을 가린 채 통화하던 아저씨도 점차 목청을 올린다. 조금 전까지도 무표정을 가장한 채 있던 사람들이 시선을 보낸다. 그러다가 피씩 웃는다. 방도 치우지 않고 개숫대 설거지라야 언제 해 준 적이라도 있느냐는 둥 자질구레한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통에. 전동차가 기우뚱하자 압박상태이던 좌석이 조금씩 조정된다. 허겁지겁 쫓아와 진정되지 않던 다급함을 깊은 숨으로 가라앉힌다. 삐질거리는 땀을 훔치며 안경을 추키기도 한다. 그리고는 마음먹은 듯 손아귀에 든 전화기를 열었다. 앞쪽 빤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숙인다. 신호가 가기도 전에 전화를 받길래 '어디야?' 나즉하게 말문을 열어놓고는 '아차' 한다. 빌미를 제공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늘 이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지 알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따지는 통에 무심코 이마 땀을 훔친다. 아니, 그냥 알고 싶어서, 어물거리자 알아서 뭐하느냐고 퉁명스레 내뱉는 투가 꼭 제 엄마같다. 애나 여편네나, 말투가 어떡하면 상대를 깔아 뭉갤까 궁리중인 듯하여 씁쓰레하다. 지금 지하철로 이동중이니까 나중에 얘기하자고 에둘러 봉합하는데 말을 끝내기도 전에 뚝 끊어선, 허공을 지나가는 신호음을 무심코 세며 있다. 그 동안에도 저쪽 아주머니는 통화를 끝내지 않아 왈왈거리는 중이다. 아이가 툭 흘리던 날카로운 음성이 아직 귓가에 맴돈다. '아빤 답답해 죽겠어.'
수업을 마치고 집에는 와 있는지, 제 엄마와 같이 있는지 등을 물어 보았어야 했는데. 전화기를 들기만 하면 왜 이리 더듬거릴까. 얼굴을 맞대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익숙하지 않은 건 둘째 치고, 뭔가 빠진 사람처럼 허둥지둥하고. 한때 나도 변화를 화두로 삼아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냐고 어느 자리에서건 요구하지 않았던가. 바람이 어디서 시작하여 지나는지 길이 훤하던 게 어느새 기척마저 알 수 없는 적이 많다. 호구지책이 우선이라, 질끈 눈을 감고 달려왔건만. 그 사이에 품안에 둔 줄 알았던 아이들마저 소 닭 보듯 제 아비 따위야 쳐다보지도 않고, 이죽거리기만 하니. 그래도 안에 기름진 토양을 채워 가끔은 달빛 내리고 바람 지나서는 어느 틈에 고운 싹을 틔울 수 있으리라 여겼지.
너도나도 힘들다고 곳곳에서 숨을 끊는 기사를 보았다. 나약한 이들의 전유뮬인양, 마침내 지르는 비명 하나 쯤으로 여겼지. 세상 누구랄 것 없이 강하다고 여긴 사람도 어느 날 몸을 덜컥 날리는 판국, 나 하나 투덜거린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할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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