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꽃이며 길이며 말言이며

*garden 2009. 5. 12. 15:30




부음訃音을 받았다. 죽은이의 길 떠남은 단호하고 거침없으나 산 자의 걸음에 감기는 것은 왜 그리 많은지.
멀어도 가봐야지요.
마침 떠나는 차가 있어 오른다. 평소 마주할 기회가 드물었는데 동질감이 사람을 묶어준다.
차를 바꾸셨네요.
치하하자 이미 두어 해 전에 장만한 차라며 가속기를 꾹 밟는다. 막히는 도로에서 차가 요리조리 내빼기 시작한다. 명소 구석구석 찾아드는 여행을 즐긴다더니 과연. 처妻와 여생을 그렇게 보내려고 했다며 맥빠진 웃음을 흘린다. 얼마 전 상처를 하는 바람에 작정은 물 건너가 버렸다.
십여 년 전쯤인가 그때에도 장례식에 같이 갔었지요?
한 오륙 년 전일 겁니다.
맞아, 그 정도쯤이겠어. 장인 어른 상喪을 창원에서 치뤘는데 이번엔 포항이네. 모친이 거기서 지내셨나?
창원에 갈 적에는 퇴근 후에 떠나야했다. 다섯이 한 차로 움직였다. 길이 멀어 은연중 부담이다. 농담 삼아 교대로 운전을 하자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다. 성정이 정확한 사람은 오가는 거리를 환산하여 오분의 일쯤에서 갓길에 차를 댄다. 어둠에 눈이 멀어 멀뚱히 보았더니 운전대를 넘기기 위해서라나. 선한 이는 선한 모습으로, 깐깐한 사람은 깐깐하게 운행한다. 네 번째로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중간에 교대하기도 야박한 듯 하여 내쳐 회사까지 와버렸다. 아침 해가 그 때 올랐다.


문상을 마치고 진작 와 있던 사람들이 합류했다. 내려올 때엔 수다를 도맡았는데 잠잠해도 될 게다. 상경하면서 자연히 지난 문상이 거론된다.
그 때 누가 같이 갔는지 생각이 안나네?
뻔한 걸 모호해 하는 이도 있다. 또 다른 사람은 그 때의 대화를 기억해 화제로 삼는다. 정작 차에서 내리고서는 다들 사우나에 몰려갔다는데 그 기억이 전혀 없으니. 사람마다 같은 사안에 대해 나중 기억하는 부분은 천양지차이다. 기억해야 할 것, 지워야 할 것,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어떤 기준으로 나누고 보관하는 걸까. 나야말로 전편을 다 꿰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이 빠진 듯 생소한 부분도 있어 다른 이의 기억을 빌어서야 고개를 끄덕이니.


여긴 곰이 하늘을 보고 누운 형태라는 곰배령. 마지막 오름에서 비로소 훤한 화원을 둘러본다. 피고지는 꽃들에게도 제철이 있다. 동의나물, 왜미나리아재비, 회리바람꽃, 제비꽃, 벌깨덩굴, 피나물, 홀아비바람꽃이 지천이다. 얼레지는 뒤편 둔덕에만 남았고 연령초, 솜나물꽃이 가끔 보인다. 멧돼지들이 구근을 파먹느라고 쟁기질을 해놓아 흙이 온통 일어나 있다. 하늘에 걸린 빼빼목이라고도 하는 말채나무. 가지가 낭창낭창하여 채찍으로 쓰는 데에서 이름이 유래했을 게다. 풍성하게 사방으로 벋어야 하는 손길. 촉수를 따라 움직이는 생명줄. 비록 어두운 곳에서 깨어났더라도 틔우는 싹일랑 맑아야지. 영혼이 푸르디푸르게 물들어간다. 태생에 따라 제각기 충실한 살이. 꽃의 걸음은 힘겹고 나무의 말은 애틋하다.
죽은이는 과연 어디로 갔는가. 여기 천상화원에서 미소 짓는 저들은 누구인가. 배웅하며 입을 다물어 말을 삼킨다. 조만간 가야 할 길임을 너도나도 알고 있기에. 꽃으로 덮인 길에 기포가 내려덮혀 윤곽이 흐릿하다. 속에 든 말이 가슴을 짓누른다. 끌탕이어도 하는 수 없지. 의미 없는 말이라도 주고받아 수근거리면 좋을 텐데. 바람에 몰려온 구름이 꽃을 덮는 것처럼.













Nathali * Giovanni Marr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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