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난전에서

*garden 2009. 6. 8. 14:50



익히 아는 뉴턴의 제1법칙. 외력이 없는 한 물체가 운동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관성慣性이라고 한다. 여기서, 습관에도 관성의 법칙은 적용될 수 있을까. 무조건 변화가 싫다면, 변화야말로 스트레스이다. 당연히 무의식의 발로에서라도 과거 상태로 남아 있으려고 하겠지.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도 이에서 비롯되면 안될 텐데.
옆에 늘 입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있다. 일이 생기면 앉아서 전화기만 든다. 갖다 주세요. 오셔야겠습니다. 지금 어떻게 안될까요? 등. 쫑알대며 쫓고 다급하게 떠들다가 깔깔거리는 즉각적이고 빠른 말투가 종일 이어진다. 엉덩이가 크지도 않건만 일어서기가 저리 싫어서야. 암팡진 면도 있지만 아닌 건 아니다. 거래처에 무언가 보내려는지 비싼 퀵서비스를 부른다. 불황이어서 호출하기 무섭게 다다른다. 드물게 몸을 일으켜선 나갔다 들어오는데 저절로 눈쌀을 찌푸린다. 따각따각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사방을 때린다. 한마디하지 않을 수 있어야지. 일어났다.
실내화가 없나요? 하나 사 줄까요?
그러기에 앞서 낡은 내 실내화 끈이 떨어졌다. 사 놓으라고 집에 말한다는 게 차일피일 놓치고 말았다. 이참에 나가 구입해야지. 그런데 슬리퍼를 어디서 사야 하는지 막연하다. 갸웃거리다가는 시장을 떠올렸다.
바닥에 흔한 비릿한 냄새. 칠도 안된 시멘트 기둥에 묻은 쿰쿰한 공기. 오래 된 건물과 몇 차례 화마에 그슬린 다음에야 겨우 넓힌 소방도로. 이른 시각이어서인지 사람은 뜸하다. 물컹한 생물이 있는 어물전과 반짝거리게 닦아놓은 사과, 향기로운 참외가 진열된 과일전, 올망졸망한 떡이 뭉쳐져 있는 떡가게라든지 아녀자들을 위한 소품 취급하는 곳을 지나 한귀퉁이 신발가게를 찾아들었다. 잇몸이 보이게끔 웃으며 나온 아주머니는 친절했다. 와이셔츠 차림인 내게 문수는 얼마냐, 그것보담 이게 좋겠다며 싹싹하게 대해 주고서는 원래 부른 가격에서 천 원을 깎아주어 기분 좋게 만든다. 이 바닥이 불현듯 친근해졌다. 어느 때 망실해버린 공간을 찾은 것처럼. 양푼에 밥과 열무김치, 고추장을 넣고 비벼서는 한술 떠다 말고 웃음을 깨무는 건너편 가게 아주머니도 낯설지 않다. 수업이 파할 무렵이어서 아이들이 가방을 떨걱거리며 달려갔다. 손에 바느질감을 든 채 돋보기 너머로 할머니가 아이들 모습을 쫓는다. 실오라기를 입에 물고 오물거리며. 비닐봉다리를 주렁주렁 들고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는 아주머니 표정은 언젠가 본 듯 익숙하다. 간편복 차림의 처녀가 맨얼굴에 동그란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지난다. 고무바지를 입고 뼈에서 양짓머리를 벗겨내던 정육점 아저씨가 슬쩍 곁눈질하며 머리를 흔든다. 그 옆에서 콩나물을 필요 이상으로 사는 할머니는 어디서 식당을 하는지, 한움큼을 빼앗아서는 허겁지겁 봉지에 보탠다. 비로소 사람 사는 세상에 왔다. 어릴 적 경란이는 단발머리에 삐쩍 마른 아이였는데, 부모가 시장에서 채소가게를 한다고 했다. 더러 시장에 가면 어머니는 경란이네 가게에서 사 오기도 하더라만, 난 경란이가 옆에 오면 딴청을 부리며 슬그머니 옆걸음을 쳤다.


사람을 기피할 수야 없지.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손 내밀 수야 없는 노릇. 소통이야 인터넷으로도 가능하여 종일 클릭질만 일삼는다. 쳐박혀 있는 게 답답하지만 하는 수 없지. 뿌옇게 내린 커튼을 젖히기 위해 한번씩 흔들어야 한다. 판토마임에 익숙한 배우처럼 마우스를 덜컥거리고 고개를 흔들며 입술을 깨물기도 한다. 서걱거리는 걸음에 한숨도 덧칠한다. 나같은 사람이 많은가 보네. 모래알처럼 흩어진 사람들이 제각기 아우성이다. 상대의 토로를 들으면 반갑기도 하고 동료애도 느낀다. 분출된 요구가 서로 맞물리며 파열음을 낸다. 정보화가 이루어질수록 편향적 시각도 심해진다. 금을 쳐서는 같은 의사를 가진 이들만 모은다. 의견이 다르면 가차없다. 소심함이 바깥으로 표현되어질 땐 과격해져 그 도를 넘어서지 일쑤이다. 알게 모르게 휩쓸려버린 난전. 딱히 살이의 본질을 따질 수야 없지만 떨치기도 쉽지 않다. 표와 리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는 없고, 작금에 나타나는 현상이 실체와 다르다고 해도 증명할 수 있어야지. 드러난 이미지로 판단하고 쏠리는 현대사회의 포스트모던적 경향이라도 별 수 없다. 침묵할 수도 없고, 상대에 대한 격렬한 적의를 드러내지 않고는 더더욱 살 수 없는 때여서.











[intro] Rondo Venez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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