發憤抒情

시냇가에서

*garden 2009. 7. 16. 17:13




거론하나마나 일 중독이 분명한 아버지는 오란비에도 불구하고 정시에 집을 나선다. 당신이 지면에 이는 뽀얀 물보라에 잠길 때까지 지켜보며, 어머니는 대문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입을 쑥 빼물고. 우울한 비가 쉴새없이 내리고 내려서 마음에 습기를 재운다.
눅눅한 이불이라든지 쌓인 빨랫감은 우짜노. 저 양반이야 오밤중이 되어서나 들어올끼고.
소리라도 지르면 나을 텐가. 성정을 주체치 못해 대문을 콰앙 닫고 돌아설 때 빗발은 더 거세진다. 모다깃비에 동반한 굉음이 지붕과 처마깃을 딱따구리처럼 두들긴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돈 들이댈 구멍은 우후죽순처럼 입을 벌리는데 꼴난 쥐꼬리봉급이락꼬 던져 놓고 태무심하믄 내가 요술이라도 부리는 줄 아능갑제. 그저께 포목시장 장씨 아줌마가 보자 카던데 거기나 가볼까. 꼴갑시러바서 내 안볼라 캐도, 솜씨 좋다고 그리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어대니 모른 척하고 가야제.


학교에서 오면 기다리는 건 웃목에 차려 둔 소반이다. 상보 안에 납작 앉은 종지들. 신김치 한 조각을 주욱 찢어 찌푸리며 서걱서걱 씹어도, 두세 차례 끓여 두어 짠맛뿐인 된장찌개를 숟가락 끄트머리에 묻혀 빨아도, 맨밥만 씹어 녹말이 당분으로 화해 감길 때까지 새김질을 해도 심심하다. 다행히 비가 그쳤다. 몇날 며칠 버티던 구름이 뭐가 그리 바쁜지, 몰려가느라 찢긴 틈으로 반가운 햇살이 드러나기도 한다.
다들 어데 갔노? 골목을 몇 번이나 내다봐도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으니. 혼자 동네를 휘젓다가는 마침내 개골창이 줄줄이 걸린 뚝방에 나갔다. 물길이 끊겨 쌓인 쓰레기에서 풍긴 악취를 훑은 황톳물이 가득하다. 위쪽엔 바지런한 아낙들이 오랜만에 누더깃감을 이고 나와 수다와 함께 빨고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다말고 섰다. 물살이 청석을 돌아 파랑을 만드는 게 보기만 해도 어지럽다. 쪼그리고 앉아 눈을 감았다. 소리 없는 물길이 끌어당긴다. 빨랫방망이를 두드리는지, 컹컹하고 입 벌린 타격음이 쫓아온다. 바투 내려간 물이 똬리를 트는 너덜지대가 수상하지. 깊은 물 바닥으로 몸이 쏠리는 것만 같아 부리나케 일어나서는 건넌다. 물길이 구비쳐 손톱달처럼 자리잡은 모래톱 가를 뒤져 납작한 돌을 주워 모았다. 하낫둘셋, 웅얼거리며 팔을 휘둘러 사선으로 돌팔매질을 했다. 돌은 수면에 닿았다가는 뜨고 닿았다가는 떠서 물수제비로 파문을 만들며 휘어지다가 꼴깍 사라졌다. 돌이 다 소용될 때까지 나는 물수제비를 뜬다.


아이들과 무자맥질하던 내川에 수챗물만 고인다. 몽글몽글 솟은 김에 서린 역한 냄새. 한때 송사리가 떼를 지어 오르내렸는데, 탁해져 붕어가 빼꼼거리다가는 기포를 올려 제 있는 자리를 알리는 미꾸라지로 바뀌더니 나중에 그마저도 자취를 감추자, 녹조류마저 살지 못하게끔 막막해지다가 죽은 하천이 되었다.
수면 위로 던진 돌이 그만큼의 세월을 건너 선 이켠. 여기저기 생태천을 만든다며 시끄럽다. 집 옆 하천도 어느새 뒤집었다.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왔다간다. 바닥을 파 비닐을 몇 겹이나 깔고 돌을 채우고 물길을 곧게 펴며 옆에는 축대를 쌓았다. 흰눈이 쌓였다가 초록 융단이 깔리기도 하고 바람이 몸을 엎어 비비기도 한다. 여름을 두 번이나 맞도록 생태 기미도 보이지 않는 풍경. 산책로에서 멀뚱히 바라보아야 하는 미끈한 내보다야 줄줄이 선 미루나무가 제 그림자 물끄러미 비치고, 물방개 맴도는 맑은 물에 어릴 적처럼 발 걷고 들어 물장구라도 치고, 물수제비라도 띄울 수 있다면 좋으련만.












Blueprints Of The Heart * David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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