發憤抒情

원조 가위손

*garden 2009. 10. 22. 16:53




거울에 빤히 비치는 이발소 안 풍경. 대기의자에 줄줄이 앉은 아이들은 좀이 쑤신다. 입이 찢어지게 연신 하품을 하거나 코를 파내거나 껌을 씹거나 졸고 있는 녀석들 생각은 오직 하나, 어서 순번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문이 빼꼼 열리더니 고개를 디미는 영복이 엄마, 북적이는 안을 보고서는 냉큼 얼굴을 뺐다. 달고 선 영복이와 동생이 병아리처럼 제 엄마를 쫓아간다.
옆 이발의자에 올라 앉은 계집아이. 십이 반에 있는 경숙이잖아. 아랫동네 사는 걸로 아는 데 여기까지 와서 머리를 깎다니. 이발사가 숱 많은 경숙이의 단발을 친 다음 면돗날을 가죽띠에 문지른다. 무딘 소음이 바닥에 깔린다. 밤송이같은 머리카락을 비질하여 모으던 아줌마가 방금 머리깎기를 다한 아이를 세면대로 끌고 간다. 거울 속에서 경숙이가 움찔한다. 목 뒤에서부터 거칠게 칠한 면도거품이 이마께에서 흘러 눈썹 쪽으로 파고 든 탓이다. 진작 감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린 아이가 똘방똘방한 머리통을 흔들며 나갔다. 십 원짜리 두어 개를 쥐어주며 내몰던 어머니. 야는 밥 묵고 머리카락만 자라나? 하셨는데 들어가면 틀림없이 소리치실 거다. 온돈 주고 반머리 깎아왔다고.


어머니 잔소리처럼 금방 이발을 다시 하게 되었다. 헌데 웬일이지? 이발소가 비어 있다. 나중에야 알아 챈 일이지만 내가 들어서기 조금 전에야 문을 열었다. 집안 행사를 치르느라 쫓아갔던 이발사가 허겁지겁 와서는 일 채비를 하다가 나를 보며 빙글거린다.
이 녀석이 마수걸이니 잘해 줘야지.
의자 팔걸이에 널빤지를 걸치고선 손바닥으로 탁탁 두드린다. 시키는 대로 높다란 의자에 올라 앉자 어질하다. 포마드를 발라 번들거리는 머리카락, 선명한 가르마에 히틀러 콧수염을 단 이발사가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여느 때와 다르게 흥얼거리는 콧노래까지 곁들이면서. 때 절은 가운 깃 위로 목덜미 살이 힘겹게 삐져나와 있다. 머릿결에 분칠을 하기에 숨을 끊었다가 쉬는데, 홍시를 터뜨린 듯한 술 냄새가 진동한다. 콧잔등이 불그무레한 게 제법 들이킨 게 분명하다.
나른한 오후, 끊기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흥얼거림을 들으며 꼬박꼬박 졸기 시작했다. 머리가 기울어지면 툭 친다. 손을 움직이는 채로 딸꾹질도 하고 코를 훔쳤다가 저만큼 가서 가래침도 퇘액 뱉는 이발사. 귓전에 가위가 짤깍거렸다. 바닷가 물살처럼 몰아치다가 잦아드는 가위질. 거울에 비치는 앞뒤를 견주며 이어지는 가위질. 아무래도 이상했지. 평형감각이 떨어진 손길을 따라 어느새 찌그러진 풍선처럼 머리가 삐딱하다. 그걸 바르게 매만지다가는 엇박자가 되고.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날 무뎌진 가위에 소가 풀을 뜯어먹은 것처럼 듬성듬성 패이기도 한다. 이발사야 아무렇지 않다. 단지 오늘 왜 이러지, 하는 표정이지만 졸음을 겨우 뿌리친 나는 울상이 되었다. 시퍼런 면돗날을 쥐고 움찔거리는 사람에게 뭐랄 수도 없고. 그뿐만이 아니다. 엇차, 하는 순간에 면돗칼로 귓등을 그었는지 따끔하다가 피도 난다. 왜 이 시각까지 이 이발소에 아무도 오지 않는걸까. 무시무시한 상상을 하며 몸서리를 친다. 인제 이발사는 꼼짝하지 못하게 두상을 누른다. 아래쪽에서 수건을 끌어 쓰윽 피를 닦고서는 찢은 신문지 귀퉁이로 상처에 척 붙여 둔다. 본인은 자각 못하는 사이 가위손으로서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
그나저나 아픔이야 순식간이지만 엉망이 되어 버린 이상한 머리 스타일로 어떻게 나다닐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안절부절한다. 다음 날은 정말이지, 학교에도 가기 싫었다.


시간이 지나면 뻔히 자라는 그깟 머리 스타일에 왜 그렇게 안달이었을까.
자라서는, 억지로 머리를 길러 지키는 눈을 피해 등교하던 녀석이 선도선생에게 걸려 머리 중앙으로 고속도로가 나는 적도 있다. 보는 우리야 큰일이라고 여기는데, 그 녀석은 악감정이 생겼는지 모자를 눌러 쓰고는 며칠을 버틴다.
골잡이로 명성을 떨치던 브라질의 호나우두는 월드컵 때 이마 위에 초승달같은 머리카락만 남겨 눈길을 끌기도 했다. 기른 머리를 질끈 묶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까치 깃처럼 머리카락을 세우거나 박박 깎고 다니는 여자도 더 이상 흉이 아니다. 두상에 글자를 새기기도 하고, 색색이 물들이기도 하여 개성을 표출하는 세상이다. 나아가 문신까지도 유행하는 즈음에 굳이 하이칼라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도 습성이고 버릇이며 고집이다. 번듯하게 잘 보이기 위해 살면서도 정작 자기마저 포기하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휴일 한낮, 도심 인파 들끓는 거리에서 이리저리 채이며 먹이를 구하는 비둘기마냥 일차원적이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내라니.













Only For You * Elizabeth Lamott





'發憤抒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은  (0) 2012.07.12
저녁소리  (0) 2010.04.20
시냇가에서  (0) 2009.07.16
옛날옛적에  (0) 2009.03.12
감자처럼 딩굴고 싶어  (0) 2004.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