發憤抒情

저녁소리

*garden 2010. 4. 20. 15:11




홀어머니 슬하인 동하. 원천적으로 우울함이 배어 있는 듯한 표정은 타고 나는 건지, 보는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오죽하면 억센 편이어서 동네에서 아무도 못당하는 제 어미가 자식 하나 못꺾어 쩔쩔 맬까. 옆에서 누가 뭐라든 일언반구 대꾸 없는 바윗돌이어서 애먼소리만 내다가 마니. 쫓는 입만 아프다.
아이구, 내 팔자야. 그눔 씨도둑은 못한다던데, 내 겨우 벗어났다 했더니 어째 커가며 똑같냐?


설쳐도 살동말동인데, 이른 아침부터 어디 가서 콧배기도 안보인다냐. 항우장사같은 힘이라도 써야 말일씨, 오삽으로 푹푹 떠 흙이라도 엎어주면 이 어미가 그나마 한뼘 묵정밭일이라도 쉬울 텐데.
어느새 봄볕이 따갑게 달아올랐다. 머릿수건을 끌어내렸더니 갑갑하지만 눈과 귀를 닫아 이도 견딜만하다. 호미로 콕콕 쪼는 밭고랑은 어림잡아도 한나절에 끝날 기미가 없다. 봄날 바람이 넘겨뜨린 청보리 너머 안산에서 쑥국새가 띄엄띄엄 운다.


버들가지가 통통하게 몸을 부풀리는 개울가를 지나다가 귀를 기울였다. 어디선가 풀잎 쓰러지는 소리가 난다. 물오리나무가 영역을 넓힌 자리에 지게 고다리가 슬쩍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둔덕에 기대 무언가에 골몰하는 동하. 만지고 다듬는 중이었는지, 발 아래 흩어진 버들 가지 속살들. 나를 보며 이를 드러내고서는 손짓한다. 주춤주춤 다가들자 불쑥 내미는 버들피리. 얼떨결에 받아서는 무어라 대꾸도 못하고 있는데, 손을 떨고선 낫을 갈무리한다. 일어서서는 훌쩍 지게를 업고 안산쪽으로 휘적휘적 향하는데, 잊은 듯 깨어난 쑥국새 울음소리. 홀로 남아 귀를 기울인다. 바람이 살랑거린다. 버들피리를 입에 댄다. 푸우~, 불어본다. 봄 냄새가 떫떠름하니 혀에 닿아 감각을 일깨우고 사지백해로 스며들었다. 조심스레 뱉어내는 호흡이 차츰 영롱하게 바뀌어 삑삑~댄다. 어느 때 밭둑에서는 보리피리麥笛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더니, 이번엔 이리 고운 소리가 숨어 있는 버들피리까지. 동네 누가 싫다고 하건말건 간에 나야말로 동하를 좋아하기로 마음먹는다.


하루 한끼씩은 싫어도 떼워야 하는 밀가루 음식. 은근히 질릴 참이었는데, 저녁에는 별미로 잔치국수를 만들었다. 어머니 솜씨도 솜씨려니와 내가 무엇보다 좋아해서. 진하게 우려낸 멸치장국에 뭉쳐 둔 소면 동산. 심심하다고 올린 애호박 썰이랑 계란 지단에 파를 빡빡하게 뭉친 양념장을 푹 떠선 얹는데, 돌담 밖에서 버들피리 소리가 난다. 아니다, 이건 뒷산에 둥지를 튼 쑥독새 소리일까. 추녀 아래 차오르는 어스름한 저녁, 바람이 옷깃을 떨자 푸르른 수피 구멍으로 드나들며 저마다 키재기를 하던 소리들은 지워지고 늙은 살구나무에서 찰랑거리던 꽃잎이 눈비이듯 흩어진다.












Beautiful Days * And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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