發憤抒情

봄 밤

*garden 2013. 4. 2. 15:45





치마저고리 두어 벌을 하룻밤낮 동안에 만들어야 한다며 한숨 쉬는 어머니. 부지런한 손을 따라 혼잣말을 줄줄 뇌까린다.
'옷을 부탁하려면 진작 해야지. 말만 꺼내 놓고서는 지가 시간 다 잡아묵고 인자서야 닥달하믄, 여편네 하고서는.'
그 여편네는 나도 안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점빵을 두어 개 지나고 개천을 면해 칠이 벗겨진 파란대문이 있는 블록 집에 사는, 어느 때 어머니에게 돈을 꿔가서는 갚지 않아 심부름으로 식전 댓바람에 쫓아가기도 했다. 집에 있는 적이 없다. 여염집 여자도 아니고 왠 화장이 그리 짙은지, 길에서라도 마주치면 분냄새가 후욱 끼친다.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치맛단을 훌쩍 걷는 바람에 속치마를 드러낸 채 앉았다. 눈웃음 치며 머리를 쓰다듬고, 손이라도 만지작거리며 친근한 내색을 감추지 않아 곤란하다. 살림살이인들 제대로일까. 헤픈 게 틀림없어. 헌데 어머니에게 오면, 신통방통하게도 마음에 딱딱 맞는 말을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늘어놓아 자존심이 한껏 치켜세워진 당신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그게 나중에야 입맛을 다시며 구시렁대게 하니.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당신 솜씨가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겠지. 그래서 아니꼽지만 군말 없이 일을 맡았을 것이다. 혹여 바느질 삯으로 받게 될 돈푼으로 우리 앞가림을 할 요량이었을지도 모른다. 날짜를 바투 잡아 밀어붙이는 바람에 쫓기겠지만 재바른 솜씨를 은연중 내비치기도 하면서 장담한다. 가위질이나 천을 자르는 소리가 이어진다. 본뜨기로 마구리한 자리를 다림질로 치댄다. 벽시계 추가 쉼없이 똑딱거린다. 시계추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점점 빨라지는 것만 같다.
'시간이 운제 이리 돼뿟네. 원아, 니는 와 안자노? 퍼뜩 자거래이.'
두툼한 무명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린다. 허긴 진작 눈을 말똥거리는 걸 알았기에 그리 지청구를 늘어놓았지. 똑딱거리는 시계소리가 이제는 이불 안까지 사정 없다. 이런 판국에 잠잘 수 있을까. 시침과 분침이 겹쳐지는 자정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견뎌야지. 어느새 골무 낀 손에 바늘을 든 채 앉아서는 잠에 눌린 어머니. 본이라도 다 떠놓고 자야 한다고 해 놓고서는. 오초 전, 똑딱, 사초 전 똑딱, 삼초 전, 똑딱, 이초 전 똑딱.....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드디어 자정이다. 시침과 분침이 하나로 따악 붙여진다. 똑딱. 순간 땡, 땡.....요란한 종 소리 열두 점으로 자정을 알리는 시계. 흐릿한 형광등이 깜박였다. 아련하게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천장에서 쥐가 한밤중에도 달음박질쳐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든다. 문득 한길에서 골목으로 들어오는 길, 누군가 들어섰다. 그리고 익숙한 구둣발자국 소리. 집 담벼락을 지나 대문 앞에 딱 멈췄을 때, 꺾여져 있던 어머니 고개가 거짓말처럼 쳐들렸다. 당신이 일어났다. 입이 찢어지라고 하품을 하며 방문을 벌컥 연다. 이제 힘 빠져 길게 드러누운 겨울. 조만간 온갖 아우성이 다 일 게다. 겨울 가뭄이 심했다. 메마른 먼지 가득한 세상을 보듬는 봄비 아래 꼬물거리는 기미가 느껴진다. 물먹은 대기 냄새가 방 안으로 후욱 밀려들어왔다.
















Back To Earth, Your Beautiful Love(intro. C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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