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길로

*garden 2009. 8. 19. 11:40




광안리에 가 있다는 친구 녀석, 전화기 너머 짭쪼롬한 소금끼가 배어 있다. 주변 소음 때문인지 말이 빨라진다. 휴양 인파로 흥청대는 항구도시가 싫어졌다나. 용호동 뒤편 이기대를 돌아보다가 밤 모기한테 온통 물어뜯겨 근질거린다며 투덜대고, 근방 길목에서 밀리는 차에 갇혀선 한 시간여나 걸려 겨우 주차를 했다고 불평을 늘어 놓는다. 예약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서너 번을 쫓겨나 겨우 자리잡고 앉은 민락횟집. 물 컵이나 소스 그릇을 얼기설기 씻어냈는지 오물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고 욕지기를 낸다. 소주를 달라고 고래고래 목청을 높여도 들은 체 만 체하고, 서울보다 물경 두세 배나 비싼 회를 시켰더니 두어 시간을 넘겨서도 아직 나올 낌새가 없다나.
정해진 휴가보다 더 많게 연가까지 소용하여 멀리 아프리카에 다녀온 회사 동료는 얼굴이 희멀그레하다. 아프리카 햇볕이 만만한가 했더니, 엄격하기로 정평이 난 트라피스트수도회 일파인 아틀라스수도원엘 다녀왔다고 한다. 설마하며 가벼운 스웨터 정도만 챙겨 갔다가는 따닥따닥 소리내며 이가 맞부딪칠 정도로 한기 드는 돌침대에서 얼어 죽지 않은 게 다행이라나. 기도와 노동, 휴식으로 일과를 채우는 수도사들과 세속으로부터의 분리와 절제를 경험하면 나른하던 삶에 윤기라도 덧칠하리라고 여겼다는데. 조과martin에서부터 만과vespers로 이어지는 억압 아닌 억류에서 지체에 따른 턱을 넘어 안도감을 느꼈는가에서는 머리를 흔든다. 지향한 외진 곳에서의 은둔이 어리석은 몸짓이었다며. 사방이 메마른 곳에서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고 한다. 우선 로밍해 간 손전화마저 터지지 않아 나중에는 지구 반대편의 시간을 세며 답답하기 이를데 없었다나. 편식을 않는 식성이 도움 될 줄 알았더니 모래가 씹히듯 음식이 넘어가지 않더란다. 그나마 매끼니 포도주가 지천이어서 위안이었다는데, 상업술로 잘 빚어진 깔끔한 와인을 입 안에 굴리며 즐기다가 텁텁한 수도원의 포도주로 대체한 시간을 떠올리면 우선 끔찍하다고 토로한다.
친구 녀석이나 동료가 굳이 먼 곳까지 다니러 가서는 이렇게 후회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반문하지 않기로 했다. 짐작이야 했지만 부산지방 사람들이 야구에 얼마나 몰입하는지는 들른 가게마다 풍긴다고 했다. 장사야 찾아든 손님이 알아서 챙길 일이다. 주인장은 티브이 화면에 눈길을 박고 루상에 나간 주자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만 관심이어서 어리둥절했다고. 허긴 외계인이 보았을 땐 얼마나 싱거울까. 공을 던지고 이를 받아쳐 겨우 바깥 루를 훔치고 돌아오는 것에 왜 열광하는지 영영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료가 왜 홍콩을 경유하여 남아프리카의 요하네스버그까지 돌아 알제리로 들어갔는지, 그리고 황량한 사막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고 몇날 며칠을 정지된 시간 속에서 허비했는지 어찌 난도 단언할 수 있으랴.


세상에 뜻을 품은 사람이 연단에 올라 엄지손가락을 쳐든다. 손바닥으로 가슴을 탁탁 치며 목청을 높였다. 자기가 없는 세상, 자기가 아닌 체제는 어림없다고 한다. 사람들은 환호하지만 돌아서면 말이 달랐다. 그이가 보이지 않아야 세상은 더 조용해질 텐데. 때로 뾰족한 오만의 송곳일랑 부디 뒤란에서 닳고 닳아 원만해져 나왔으면.
너도 나도 떠나고 돌아오기를 거듭하는 동안 비우고 채워지기 또한 수 없이 이루어질 것이다. 습관처럼 몽상하고 허망한 신기루라도 쫓는다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들 떠나기를 포기할 것인가. 차라리 길에 주저앉아 있을지언정, 그래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는 일도 즐겁다고 나서는 발길, 낯선 길에서 홀로 됨을 느끼고 헤매다 보면 돌아옴도 더 간절하고 머물러 있던 곳이나 시간의 귀함도 깨달을 수 있을 게다.












Travel * Claude Ch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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