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이 여름, 저 가을

*garden 2009. 9. 8. 14:50




자글거리는 초가을 볕이 저만큼 앞 아주머니가 받혀 든 꽃 무늬 양산 위에서 튄다.
어떻게 저러고선 나설 생각을 했을까?
옆에서 혀를 찬다. 아침저녁으로는 선득할 정도이고, 낮엔 양철통 안처럼 달궈진다. 간편한 겉옷을 벗어 팔에 걸었는데, 등짝이 패인 윈피스 때문에 허리 바로 위까지 골이 내려간 미끈한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 일행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개중에는 '그나마 볼만하다.' 며 웃어 넘기기도 한다. 이해가 되고 말고는 자기 기준에 꿰어맞춘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팀을 옮겼다. 사무실이 웬만큼 멀어야지. 출퇴근이 힘겹다. 가라앉은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방치하여 처음엔 아무렇지 않았는데, 주변과 대치시키며 이것저것 비교하자 차츰 자책이 일다가는 회의가 든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얼핏 지나쳐 본 장면 하나. 갖가지 생김새의 외계인들이 혼자 중얼거리거나 스킨십을 하며 어울려 술을 마시는 변두리 행성의 선술집, 그런 곳에 뚝 떨어진 것처럼 난감하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안녕을 위해 까닭없이 호의를 보이며 친밀감을 표하여야 하는가. 단연 도리질을 한다. 항해를 하듯 좌표를 기억하면 되지, 뱃전에 치닫는 물결일랑 신경 쓰지 말아야지. 애써 무관심할 것, 애착을 가지지 말 것 등을 되뇌며 사무실에 들어선다. 거기서 거기이니 일이야 집중하면 되지만 살이란게 그래야지. 속도전이 대세인 바깥 세상에 비해 여긴 느리다. 젖어들다 보면 쳐지기만 한다. 이래서는 안되지, 작심하면서도 마음을 둘 수 없으니. 창에 비친 높은 하늘 한쪽 구름 떼가 환하다. 그걸 보자 둥둥 떠올라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부서에 한둘뿐인 남자 직원들은 옆에 오지 않았다. 나이 등의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공유할만한 문화가 없다. 어떤 사안에 대해 물어보는 참에 대답이라도 반듯하면 좋으련만,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어벙벙해서야. 두어 마디 말을 주고받다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침잠한 이곳 분위기 탓이겠지. 열정 등은 아예 꺼낼 수 없다. 구성원이 죄다 여자들인데 대개 나이가 든 축이다. 영을 세우자니 시건방져 보일게고, 두자니 일이 제대로 되어질까.
잠깐 봅시다.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고참격인 사람이 제꺼덕 온다. 허나 눈도 맞추지 않고 시선을 발 끝에 두고 있다. 간신히 고개를 들게 했더니 돗수 높은 안경을 추키는데, 안경 너머 시선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어질어질했다.


휴일에는 숲길을 거닐었다. 바람은 흔적 없다. 땀이 끝도 없이 솟아 뚝뚝 떨어졌다. 습한 기운이 휘감아 끈적하다. 고개를 넘고 다시 고개를 오르며 허덕거려도 닿아야 할 곳은 까마득했다. 늦더위에 잠식된 여름은 훨씬 길게 느껴진다. 군데군데 난무하는 햇볕이 따갑다. 오가리가 든 것처럼 생기를 잃고 허덕이는 나무들. 때가 때인지라 생장의 기운이 끊어진 지 오래이다. 지나온 길을 떠올렸다. 잎갈나무들이 우뚝한 길을 지나 활엽수림을 건너자 수북한 풀섶에서 며느리밥풀꽃이나 노란 금불초 등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부연 햇빛에 뜬금없이 그 때의 임지에서 일을 뒷바라지해 주던 순덕이나 계정이, 만숙이, 효정이, 명순이 등이 떠올랐다. 고집들이 세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고서도 주어진 일에 골똘히 열중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부끄러움 많은 천성을 감추지 못해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사람들이 나중 돌아오기 위해 짐을 꾸릴 때에는 눈물을 글썽였는데.
걷는 중에 어떤 기준으로 보고 들은 것을 측량했던가. 떠나오고서야 알았다. 아침부터 쉴새없이 몰아치며 뛰어다녀야 하는 곳에 되돌아온 것을. 그네들은 어떤 면에서라도 여기가 어울리지 않았다. 경쟁이 싫어 물러난 언저리에서 이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늘상 머물러 있는 그네들만의 공간. 누가 잘났느니 못났느니 따질 필요 없이 종일 책상에 박은 눈을 들지 않았다. 무심한 세월이 강물처럼 흐르다가는 더께 앉은 자리. 연락조차 않고 덮어둔 날을 문득 떠올리고 있다니~













Celebration of the Heart * B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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