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봄날 아침

*garden 2010. 4. 7. 12:02




몸이 천근만근이어도 움직여야 하는 아침. 일어나려다가는 현깃증으로 휘청한다. 어젯밤 언제 들어왔던가. '진행형' 을 되풀이해 외치는 녀석들과 입씨름만으로 세상을 난도질하다가 자정을 넘겨 어영부영 일어섰는데, 결국 택시를 잡아 탔지. 인사불성인 채 내린 기억도 가뭇하건만, 집 안에서 터억 눈을 뜰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가만 있자. 오늘은 어떤 일이 잡혀 있더라. 거울 앞에서 치약 거품을 물고는 짚어 봤다. 만나야 할 사람도 서넛 있고 처리해야 할 원고도 여러 건이다. 참, 이러고 있을 판이 아닌데. 아침 시간은 쏜살같아 잠깐 한눈 팔아도 부대낀다. 부랴부랴 챙기고 쫓아나와 잰걸음을 뗀다. 헐레벌떡 계단을 오른다. 문이 닫히려는 전동차에 튕겨진 구슬처럼 뛰어들었다. 밖은 쌀쌀하더라만 달려온 뒤라 몸이 후끈하고 입안은 깔깔하다. 슈퍼맨이 따로 있을까. 주어지는 임무마다 불평 한번 없이 못해내는 적 없이 거뜬히 처리하는 스스로가 대견했는데, 새삼 예전을 떠올리면 아찔한 건 제쳐 두고라도 채우지 못한 마음 한켠이 왜 씁쓸해진다. 다행히 전동차 이음매 끝부분은 한적하여 혼자 숨을 가라앉히기에 제격이다. 한눈에 드는 차내 전경. 신문을 뒤적이거나 디엠비 등에 눈길을 꽂고 있는 이가 있는가 하면, 주체치 못하는 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도 상당수이다. 유난히 밝은색 외투에 물결 무늬 후드티를 날렵하게 차려입은 아가씨마저 몽당치마에 맨 다리를 드러내고는 숙인 고개에 늘어뜨린 긴머리가 산발귀신처럼 가려서는 치렁거린다. 장년의 신사가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를 모시고 들어왔다. 꽃구경은 일러도 우중충한 데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지. 바람이라도 쐴 겸 나선 걸까. 이쪽 빈자리에 어른을 앉히고서는 꼼꼼하게 옷 매무새를 만져준다. 이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할머니가 두꺼운 돋보기 너머로 무표정한 눈길을 이리저리 쏘았다. 뜨끔하여 주던 시선을 거둔다. 저렇게 어른을 모시고 나선 적이 있다.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무작정 어린이 대공원으로 간다. 당신 의견도 묻지 않고 커다란 바퀴에 작은방이 촘촘한 대관람차에 올랐다. 톱니바퀴 조이는 소리에 또다른 세상에 든다. 한칸한칸 올려진 셔틀이 허공에 떠 끄덕인다. 사방 구경이나 하시라고 말할 참인데 내가 어질어질하다. 당신이야 물론 내다보기는 커녕 눈을 꼭 감은 채 꼼짝 않는다. 조심스레 손을 잡지만 도리질만 한다. 꼭 이맘때여서 봄날 꽃놀이라도 떠올렸건만 꽃은 드물고, 소슬바람이 한기를 불러 옷을 여며야 했다. 소음을 내재하고 지쳐가던 전동차가 기우뚱한다. 급작스레 브레이크를 밟은 바람에 '어어~' 소리 내던 사람들이 뒤로 쏠린다. 급기야는 난간에 한쪽 어깨를 기대고 화장하느라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던 아가씨 몸이 돈다. 거기까지였으면 다행이련만, '아차!' 하는 사이에 가누지 못하고는 비칠거리다가 나동그라져 버렸다. 다리가 쳐들려서는 일어나려고 버둥거릴수록 우습다. 그게 가엾어 마침 옆에 있던 내가 팔을 내민다. 겨우 추스린 아가씨, 창피한 걸 견딜 수 없다. 손에 든 화장품을 쓸어넣듯 가방에 챙기고는 마악 들어선 역에서 내려버렸다. 참 나, 고맙단 말 한마디 없다니. 소동을 보며 빙글거리던 사람들이 다시 제각각의 자리로 돌아간다. 봄날 같은 아침, 저만큼 재인 시간이 문득문득 열렸다. 지상에선 목련이 비로소 숨길을 틔워선 안간힘을 돋운다.














April * Deep pur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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