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자리잡기

*garden 2010. 4. 27. 13:12




집안 행사가 있어 모이기로 했다. 이모저모 따지고는 출발시각을 정해 일러둔다. 식구들 반응이 시원찮더라니, 막상 당일이 되자 삐걱이며 발목을 잡는다. '꼭 가야 하느냐' 에서부터 '빠지면 안되느냐', '다음에 가면 어떻겠느냐'는 등 주절주절 놓이는 장광설. 화를 눌러 참느라 붉으락푸르락해도 일어설 기미가 없다. 넌지시 아이를 불렀다. 중간고사가 끝난 판국에 바쁜 일이란 게 무어냐고. 천안함 침몰사건 희생자 분향소에 가기로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는데. 말을 끝내기도 전에 호통을 친다. '그게 중요하냐, 집안일이 중요하냐?' 앞뒤 가릴것 없이 따지다가 입을 다문다. 집안일에 가야 마땅하지만 여의치 않다. 자연히 사정을 헤아려 선약이 있을 땐 부득불 미루기도 했지만 이를 빌미로 그마저도 하찮게 여기게 되었으니.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게 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건가.
주말이면 으레 과제처럼 주어지는 예식이나 의례. 어떤 곳은 이런 핑게로 또다른 곳은 저런 핑게로 가는 사람에게 봉투를 딸려 보내는 것으로 대신하지 않았던가. 내가 중요하다 여기는 것도 실은 자기 핑게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그 연장선에서 집안일이랍시고 강요하다 못해 윽박지르며 폭군처럼 따르게 하느라 불편하게 만들기가 다반사였으니. 가기 싫다는 식구를 억지로 데리고 가면 뭐하겠는가. 도살장에 끌려간 소처럼 우거지상이기 십상일테니, 그걸 보는 친인척인들 기꺼운 마음이겠는가.


종점에서 앉아 출발하지 않은 이상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며 자리 차지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예전 강남 대치동에서 남산 드라마센터까지 출퇴근할 때의 일이다. 78번인가, 하여튼 매일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에 갇혀 이리저리 쏠리며 다니기가 예사였는데, 그날은 어럽쇼, 앞에 앉아 졸던 학생이 흘리던 침을 미처 닦지도 못하고는 후다닥 뛰쳐내리는 게 아닌가. 꿈은 아니겠지. 뻣뻣한 장딴지를 쓰다듬었다. 살다보니 이런 때도 있구나. 주변 사람들의 질시와 선망의 눈초리를 받으며 조심스레 앉는다. 그만 하루가 행복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건 왜일까. 험험, 헛기침을 내 뿌듯함을 가라앉히며 겨드랑이에 낀 신문을 조심스레 펼친다. 채 한 정거장을 갔을까. 앞쪽에서 다시금 버스에 오른 승객들로 불가피한 차내 조정이 필요하다. 뒤로 가라고 기사가 소리치건 말건 만원이니 옴쭉달싹 못하는 승객들. 급기야는 코너를 돌며 두어 번 휘청이고 급브레이크를 뗐다 밟았다 작동한 연후이다. 스크럼을 짠 것 같은 사람들 장벽을 어떻게 뚫었을까. 만만치 않은 살집을 소유한 할머니가 그야말로 맹렬하게 나타났다. 사실은 할머니라 부르면 벌컥 화를 낼 법한데, 굳이 내앞에 와선 힘겨운 척할 때에는 영락 없는 할머니여서. 망설일 필요가 있을까. 바야흐로 복잡해지기만 하는 사회에서 서로에게 눈길 주기 힘든 지경이지만 아직은 이 사회를 유지하는 뼈대랄 수 있는 삼강오륜을 어떻게 내팽개칠 것인가. 눈 딱 감고 일어선다. '나는 젊었거니' 를 속으로 되내며 낭랑하게 소리친다.
"여기 앉으세요."
기다렸다는 듯 두말없이 앉는 아주머니, 아니 할머니. 제풀에 의자가 꺼지는 소리가 유난했다. 늙는 것도 서럽거늘, 복잡한 버스 안에서 오죽 힘들었을까나. 그런데 섭섭한 생각이 슬며시 든다. 의례적일지라도 메마른 인사라도 던지면 좀 좋아! 그런 때 할머니가 두 손을 맞잡았다. 기돗말을 왼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뜻밖이라는 듯 쳐다본다. 실소한다.
그 순간 나야말로 눈을 번쩍 떴다. 그렇게 맹목적인 신이라도 마음에 들여다 놓아야 하지 않았을까. 힘들 때 같이 힘겨워하고 슬플 때 같이 울며 즐거울 땐 함께 웃을 수 있는 신이 있었더라면, 진작 기대고 부르며 손 벋어 올라 거뜬히 꽃이라도 피울 수 있었으련만!











Rondo Veneziano * Musica Fant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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