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겨울나기가 무척 힘들었다. 아이들은 대개 훌쩍이며 다녔다. 콧물을 훔쳐 반들반들했던 소매 끝단. 겨울이면 동생은 여린 손발이 동상으로 고생했다. 추위는 깊고 깊은 골짜기여서 내려가면 오르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골짜기 한켠에 옹기종기 모여 시린 손을 입김으로 녹였다. 그러면서도 춥다는 표현을 냉큼 하지 못했다. 아무리 발을 동동 굴러도, 연신 춥다는 말을 내뱉어도 추위가 가셔질 수는 없는 노릇. 여름 삼복더위도 마찬가지이다. 덥다고 웃통을 벗어제치거나 오두방정을 떨면 혼이 났다. 모름지기 춥거나 덥거나 간에 묵묵히 견뎌야 했다. 부단하게 참아 일말의 감정 나부랭이일랑 입안에 우물거리다가 삼키는 방법을 익히는 게 최선이었다. 감정통제가 어려워도 젖어들면 괜찮다. 상태가 조금만 달라져도 이는 소란에 태무심한 내가 이상한지 힐끔거리는 이들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이른 봄 아침 나절, 사무실에 들면 냉기로 뼛골이 시리다. 앞자리 사회 담당은 쫑알거려 동료들에게 동의를 구하고는 당연히 쫓아온다. 난방을 해 달라고 요구한다. 난방 가동도 기준이 있다. 에너지 절약이라든지 지침에 따르는지라, 이를 따지면 무뚝뚝한 담당은 우물거리다가는 고개를 흔든다. 뻔한 결과를 채근할 수는 없다. 애써 웃음으로 답한다. 점심때가 되었다. 자글거리는 해로 사방이 달아올라 텁텁한 기운이 욱죈다. 다시 사회 담당이 다가와 입을 삐죽댄다. 에어컨을 틀어 달래나. 매를 벌려고 작정했는지, 한나절 사이 변덕이 죽 끓듯 하다니. 대꾸마저 않는다. 감정이 기분에 따라 마구 표현된다면 곤란하다. 모두 공감한다면 들어 줄 수도 있겠지만 유독 그렇게까지 날뛰어야 할까. 그런데 춥거나 더운 것이 나도 견디기 힘들게 되었다. 나이 탓으로 돌려야 하나.
야외활동이 더없이 좋다는 봄이나 가을이 예전 같지 않다. 내노라하는 전문가들이 봄을 진단한다. 수척한 게 중병을 앓는 중인가. 오던 봄은 어디 있는가. 머문 봄은 또 보이지 않으니. 그러다간 덜컥 건너뛰어 바로 여름으로 이어질 줄이야. 걷잡을 수 없이 터진 햇볕에 눈을 뜰 수 없다. 한낮 아스팔트가 달아올라 깡동거리며 '앗, 뜨거!' 를 연발하던 아이들. 바닥분수에 온몸을 적시며 뛰놀았건만 돌아갈 즈음이면 난데없이 으슬한 바람이 일어 입술은 시퍼렇게 변하고 맨살에 소름이 돋았다. 집을 나서며 하늘거리는 옷차림으로 치장하면 낭패 보기 일쑤였다. 사월 말의 눈(雪)이 낯설지 않다니. 하루 걸러 퍼붓는 통에 간신히 깨어난 꽃들이 애처롭다. 순리에 따랐어도 사방에 뻗친 냉기로 움츠러드는 생기.
"날씨가 왜 이리 불순해?"
"그러게 말야. 온난화 영향으로 한반도가 점차 아열대화되어 간다더니 거짓부렁이지!"
피다 말고 지는 꽃. 늦게 눈을 틔우고서는 금새 사그라드는 싹들.
휴일이면 습관처럼 배낭을 꾸렸다. 바람을 타고, 겨울이 끝나기도 전에 전국을 내집처럼 들쑤시고 다닌 탓에 제대로인 봄을 느낀 적이 없다. 자연히 봄인듯 아닌 계절이어도 익숙할 만한데 이리 들떠있다니.
오르락내리락 헤맨 강원도 산간. 여기는 해발 천여 미터나 되는 고지이다. 바람이 자도 성근 햇살. 겨울은 자취 없고 봄은 이르나니, 자분자분 일어나는 내 발자국 소리, 적요해 좋다. 조릿대 무성한 산길을 헤친다. 서걱거림이 그치지 않았다. 미상불 나목인 채 견디는 나무들. 여기저기 공손하다. 내달린 날맹이들마다 선머슴 까까머리처럼 덮고선, 그 장한 기상이 미덥다. 지난한 세월의 강에서 떠올리는 수 많은 이들. 날선 말로 쫓고 찌르며 생채기를 내 후비던 일이 후회스럽다. 애틋함을 지우더라도 묵묵하면 되었을 것을. 봄인듯 아닌듯 내가 나를 지켰더라면 좋았을 것을. 안달한 날이 왜 이리 미운가. 숲 속 빈 나뭇가지 사이로 새들이 난다. '후이잇후이잇~' 소리 내는 것이 동료와 함께 봄마중이라도 할 양인지. 바닥이 들썩인다. 풀꽃들이 까치발로 키를 높인다. 가라앉았어도 성큼 살아있는 세상, 부풀어 오른다. 비로소 나도, 조금씩 달아올라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