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 둔 화초들. 어째 잠자리에서 막 빠져나온 우리 꼬마처럼 부숭숭하다. 지난 봄, 고르지 못한 일기 탓인가. 안되겠다. 밑에 내려 땅힘이라도 받게 해야지. 부산을 떨며 몇 차례나 승강기로 오르내리락거린다. 화단 한쪽 눈에 잘띄는 곳에 모아 두고 오갈 데마다 눈길을 주었는데, 한 며칠 전부터 화분이 보이지 않았다. 시들시들하던 잎에 생기가 들어 보기 좋은 참이었다. 없어진 걸 알고 식구들은 분개했지만 같이 내색할 수 없다. 화초를 사랑하는 누군가 가져갔다면 부디 잘키우시기를.
꽃에 관한 기사가 신문에 났다. 정심한 꽃을 떠올리며 숙독하는데,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머리를 기울여 같이 읽는다. 화장기가 없는 대신 말간 영양크림 냄새가 훅 끼친다. 다 읽은 신문을 접자 그 아주머니가 달라고 했다. 마침 허리 굽은 할머니가 파지를 잔뜩 실은 마대자루를 끌고 오던 중이었다. 내버릴 참이었는데, 양손에 잔뜩 쥐고 있은들 그 주인은 따로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내게 하찮은 그 어떤 것이 누군가에게 요긴하게 소용된다는 게 경이롭다.
숙제하듯이 의무적으로 꼬박꼬박 쏟아낸 지난 내 글. 무심코 다시 읽을 때면 부끄럽고 부끄럽다. 왜 이렇게 썼을까. 모자라는 부분이 이렇게 많을까. 자책하면서도 별 수 없이 채워야 하는 칸들. 화초처럼, 꽃에 관한 기사가 실린 신문처럼 소용될 때가 올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