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껏 허룩하기는커녕 산만 높다.
아부지는 와 안오노?
너거들 자고도 한사리가 열두 번 왔다갔다 해야 할끼다.
밤은 어찌 그리 까만지. 까무룩 가라앉았다가 먼 산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바람에 흔들리던 전등이 깜박거렸다. 실눈을 뜨자 눈앞에서 아부지가 한 눈을 찡긋한다. 종이봉지에서 꺼낸 굵은 설탕에 굴린 왕사탕. 세 개씩 나누어 머리맡에 놓다가 일부러 내게 한 개를 더 얹었다. 잠결이라도 집으려고 하자 와중에도 이를 본 어머니가 말렸다. 천 근 같은 잠에 짓눌려 팔만 허우적인다.
먼저 깨난 동생들이 사탕을 죄다 빨아놓아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거울 앞에서 아버지는 포마드 바른 머리를 매만지며, 삐뚜름히 문 담배를 뻐끔뻐끔 피웠다. 연보랏빛 담배연기가 몽롱해지고 당신이 둥둥 떠오른다. 상을 들이던 어머니 눈이 화등잔만해졌다. 왕사탕 하나씩을 물어 양 볼이 불룩한 동생들이 까르르 댄다. 손뼉 소리가 자글자글 끓었다.
저기 돌아앉은 산이 꼭 아부지 닮았는기라. 이웃산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쪼매만 들어감 어무이산도 안보이겠나.
가도가도 시린 속. 검은등뻐꾸기가 호요요요 운다. 누군가 빨대로 공기를 주입하듯 숲이 부풀어 올랐다. 짙푸른 그늘이 움찔한다. 나 잡아보라고 후드득 날갯죽지 떠는 장끼. 몸사위 사라진 뒤쪽에서 꿍얼꿍얼 까투리가 앓는 소리 낸다. 나무 뿌리들을 적시고 새나온, 영혼을 닮아 푸르른 물이 길을 낸다. 오직 낮은 곳으로만 소통하는 길. 산들이 기별을 받아 적는다. 비로소 내가 내를 만나 껴안으며 아그배 꽃잎을 한줌씩이나 실어 날랐다.
물소리 저편에서 묻어 두었던 얘기를 찾을 수 있을라나. 아직 피지 못한 꽃이 마지막 힘을 주며 견디는 저녁. 내일은 몇 개의 산을 또 넘어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