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마당

[가족♥]그리고

*garden 2010. 5. 19. 15:56




오랫동안 당신이 누운 자리가 비었다. 대신 한낮 열어 둔 창으로 든 노란 햇살이 반쯤 점령했다. 달려갈 적마다 눈을 꼬옥 감고 계시던 어머니. 대체 어떤 행복한 꿈이길래 그토록 쉬임없이 꾸어야 했을까. 더러 말간 미소를 기대하기도 한다. 허나 표정이야 평온하지만 결코 입가에 웃음은 떠올리지 않았다. 그래도 주시하며 기다린다. 금방이라도 두 팔을 치켜들지나 않을까. 기지개를 켜며 '자알 잤다.' 며 일어나리라고.
당신이 누운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침대에 누웠다. 햇살이 아프다. 콕콕 눈을 찌르는게, 할 수 없이 감는다. 시각을 닫자 후각이 살아났다. 이게 뭐더라? 어릴 적 게걸스럽게 빨아대던 젖 냄새를 맡은 듯하다. 혹시 어느 때까진 나이를 채우다가 일정선에 이르러 다시 줄어든다면 어떨까. 누운 채 요 밑으로 손을 넣어 무심코 더듬거린다. 뭔가 깔깔한 종이가 잡힌다. 만지작거리다가 부시시 일어났다. 동강난 사진이 쫓아나왔다.







반쪽뿐이었는데 잘린 자리가 거칠다.
예전 시골 대청마루가 떠오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중심으로 온가족이 주변에 주렁주렁 달려 있던 사진틀. 엄마나 이모의 풋풋한 처녀 시절 미소가 꽃 무늬나 하트 안에 들어 있었다. 한쪽 구석에 날림체로 단기 연도가 매겨진 채. 서글서글하던 외삼촌 눈은 늘 봐도 어찌 그리 싱그럽던지. 잔디가 푸른 언덕 위에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세운 채 언제까지나 꼬마 외삼촌을 데불고 있기도 했다. 외가 식구들은 내가 머물러 있던 시점보다 훨씬 싱싱한 시절에 있었다. 바람이 처마를 쓰다듬다가 기웃거린다. 미처 들지 못한 빛이 저희끼리 부닥쳐서는 되쏘이다가 어렴풋하게 흘렀다.


생각난다. 이 사진은 우리 집 대청에 그렇게 걸려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앨범 안에서 슬쩍 보이다가 멸실되었다. 왜 여기에 있을까. 그것도 반쪽만으로. 나는 요를 들쳤다. 아프리카 오지에 찾아든 탐험가처럼 미간을 좁히며 심각해졌다. 뒤지는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곤 기어이 반대편에서 또 다른 반쪽을 찾아냈다. 잘 쓰시던 가위를 왜 동원하지 못했을까. 부자유스런 몸이어서, 누운 채 무언가를 자르는 일도 매끈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옆에서 과일을 깎던 며느리가 자리를 비웠겠지. 그 틈에 방치된 과도를 사용했을까. 슬쩍 주의를 돌려 내보낸 다음 누운 채 나름대로 애썼나 보다. 별 잡다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와 마음이 어지럽다.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예감했겠지. 그리고 영정 사진을 생각한다. 가장 고울 때 제일 환하게 찍어둘걸. 곱게 찍힌 모습이 어디 있더라. 기억을 뒤적여 집 안 앨범을 편다.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끔, 아무렇지도 않게.
너희들과 함께 한 세상, 더 이상 같이 하지 못하는 이 에미를 이해해다오. 그리고 가장 고운 모습만 기억해다오. 사진의 나머지 반쪽이야 다음에 너네 아버지 돌아가시거든 다시 사용해다고.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플래시를 터뜨리던 환한 날이 떠오른다. 억지로라도 함께 찍어 두길 잘했다.


상을 치르고 난 다음 당신의 사진을 꺼냈다.
하지만 너무 젊고 찬란하던 시절이라, 새삼스러워 차마 영정으로 쓰지 못했다. 당신이 갈라 놓은 사진처럼, 삶과 죽음으로 갈린 채 두 분은 한동안 다른 세상에 속해 있다가 다시 합쳐졌다.


흙으로 곱게 화해 당신은 기억조차 되살릴 수 없더라도 저는 고운 당신만 담고 있습니다. 풋풋한 오월 햇살을 받으며 부풀어오르는 그 숲에서 부디 안온하고 맑게 웃고 계시기를요!










Common Ground
*
Jeanette Alexander(piano), Nanci Rumbel(ocarina & oboe), Eric Tingstad(guitar)







'햇빛마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막간에   (0) 2010.07.09
노래하는 숲  (0) 2010.07.02
햇빛 좋은 날  (0) 2010.04.01
코끼리 울음   (0) 2010.01.28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0) 2009.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