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마당

햇빛 좋은 날

*garden 2010. 4. 1. 09:23




큰애가 조막만할 적, 햇빛이 하도 좋아 안고 나갔다. 베란다를 서성이는데 이웃에게 들켰다. 미소 짓던 이웃이 지나칠 수 없다는 듯 한마디 던진다.
"그 집에 언제 애가 있었나요?"


바깥에 울음소리 한번 내지 않은 순둥이 큰애에 비해 작은애는 계집아이지만 성깔이 보통이 아니어서 찡그린다. 울음을 터뜨리면 그치지 않았다. 악을 쓰며 바둥거림에 보채임도 소용 없다.
열린 사회로 전환되던 참이다. 요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하루에도 열두 번씩 들썩인다. 대체 나는 어디에 중심을 두어야 하나. 심정적으로야 이쪽저쪽 다 이해하지만 쏠림이 싫다. 어느 한쪽을 편들 수 없으니. 어중간하여서는,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다. 와중에 집에 오면 애가 밤낮 없이 바락대니 견디기 어렵다. 무심코 입애 올리는 팔자타령. "이 녀석이 태어나고서는 주변이 풀리지 않는단 말씸이지."
아이들이 자라며 성정 차이는 더욱 확연하다. 작은녀석과 큰녀석 성격이 애초 바뀌었어야 하는데. 오죽하면 깐깐한 동생한테 큰녀석이 시달려 쩔쩔 맬까. 그런 때면 중재하는 게 편애로 보이는지, 금방 쏘아댄다.
"왜 오빠만 사랑해요?"
"아무려면 그렇기야 하겠니? 세상 누구보다 예쁜 우리 딸을 사랑해."
다독이지만 쉬이 믿는 눈치가 아니다.

간절기에 불쑥 찾아드는 불청객. 집안 식구들이 감기를 앓았다. 그렇게 겨울치레를 하는구나. 두고 봐라, 조만간 봄이 올 거야. 다들 툴툴 떨고 일어섰어도 딸애만은 호된 감기 끝자락을 놓지 못한다.
'된통 앓고나면 부쩍 자란다는 옛말이 있잖아. 걱정 말어.'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해도 속이 탄다. 열로 갈라 터진 입술을 적신 가제로 닦아준다. 밤새 거북한 숨소리를 내는 아이가 채여 뜬눈으로 새운다.
'한며칠 앓아 수척한 내 새끼.'
오늘에야 펄펄 끓던 열이 내린 듯하다. 이마도 짚어보다가 축 늘어진 아이가 안돼 보여 들춰 업었다. 간신히 실눈을 뜬다. 힘 빠진 팔이 거미발처럼 달라붙었다. 겨우 제 아빠 목덜미를 껴안았다지만 조여 캑캑거린다. 조심스레 자세를 추슬렀다. 깜박깜박 잠에 빠지면서도 깍지 낀 팔을 도무지 풀려 하지 않는 통에 애꿎은 거실만 맴돌았다.
밤새도록 노릇한 빛을 내며 눈앞을 휘젓는 검불. 사방을 둥둥 떠다녔겠지. 소리를 질러도 대꾸 없는 감감한 데서 발을 벋어 홀로 서는 법을 익힌다. 마음이 놓이는지 숨소리가 진정된다. 정신줄이 가라앉은들 어젯밤만큼일까. 나는 출근할 엄두도 낼 수 없다.


어릴 적 어머니 등에 업혀 본 기억이 왜 전혀 없을까. 걸핏하면 동생이야 포대기로 감싸 업고 다니더라만. 대신 외갓집에 갔을 때 막내이모가 나를 업어 준 적이 있다. 등에 뺨을 대면 겨울날 깊은 우물에서 퍼올린 샘물처럼 온기가 옮아오는 것을 즐기며 가는 길 걸음을 세기 일쑤였는데. 이모는 다 큰 녀석을 업고서도 썽퉁썽퉁 걸었다. 징그러워 외면하는 기색 없이 온갖 시답잖은 물음에 꼬박꼬박 대꾸를 해가며.
"어데쯤 왔노?"
"쫌만 감 된다. 다와 간다 아이가."
"이모, 달이 자꾸 우릴 따라와."
"암시롱, 달님이 니가 차암 좋은갑다."


그렇게 걸어 온 길 어디쯤인가에서 온데간데 없는 얼굴을 찾아 손차양을 하고 멀리 본다. 햇빛 좋은 저 길을 따라가면 만날 수 있을까. 왈칵 부둥켜 안고 뺨 비비며 웃을 수 있을까. 행복에 겨워 쟁알거릴 때처럼.

















Kitty on The Piano * Frank Mi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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