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마당

소슬바람 일던 저녁

*garden 2010. 9. 7. 10:13




놋쇠 밥그릇이 댕강거리도록 밥알 하나 남김없이 긁는다. 아쉬움 끝에 접는 만찬. 헛배나마 쓰다듬어야지. 거품 꺼지듯 열기가 가셔 의아한 저녁, 여느 날과 달리 평상에 일렁이는 바람. 딩굴대다가 '아!' 하며 소리 지를 뻔했다. 조금 전까지도 보이지 않더니. 세숫대야로 갖다 퍼부은 듯 총총한 별이 명멸한다. 두런거리던 말을 거둔 지 얼마나 되었나.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깜박거리는 별. 간혹 운동장에서 산지사방으로 뛰는 아이들처럼 실선을 그으며 사그라드는 별들. 저기 별똥별, 거기도 별똥별. 발 아래 웅크린 동생을 툭툭 건드려도 이미 반응이 없다. 화사한 꽃이라도 꺾어들었는지, 웃음만 머금고 입맛을 다시기도 한다. 푸르르르, 개울 건너 구릉에 풀어 놓은 소처럼 밭은 숨을 내쉬던 어머니가 돌아눕는다.
"아이고, 바람이 차암 좋타."
반바지 아래 오금 뒤쪽을 벅벅 긁다 말고 일어난다. 바람이 저기서 손짓으로 이끈다.


그 저녁 포만감과 나른한 어머니 코곯이와 동생들의 기면증은 오랜 날을 떠나있어도 지워지지 않았다. 평상이 있던 자리와 우뚝하던 오동나무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건만, 시끌벅쩍한 자리에서 빠져나와 홀로 걸어갈 적이면 정경이 쫓아나와 동행하곤 했다.
'저녁거리로 떼운 게 뭐였더라. 수제비이던가, 아님 보리밥이었던가. 이렇게라도 배를 채울 수 있다믄 오감치, 아암.'
아름드리 오동나무 등걸을 짚으며 어머니가 일어선다.
"야야, 인제 오냐?"
"네, 어머니. 좀더 주무시지 않구요."
"아니다. 밤 이슬에 젖을라. 애들 깨워서 들어가자."
날마다 식구들을 채근해 들어도 텅빈 방. 인제 그때처럼 별 보기가 힘들다. 익숙한 바람마저 더 이상 불지 않는 저녁. 밤새 헤매고 다닌, 후줄그레한 차림으로 낯선이들이 모여 뜻모를 소리로 웅성이는 곳에서 어리둥절하기 만한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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