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마당

그렇게 지나간다

*garden 2010. 10. 29. 14:23




마스크로 가려 눈만 내놓은 칫과의사. 표정이야 모호하지만 이를 악물었다. 팔뚝에 드러나는 힘줄이 보잘것 없어도 그만하면 충분하다. 물경 수십 말의 곡식을 바수고 수 톤의 고기를 거덜냈을 안쪽 장한 어금니를 폐가 흙벽돌 들어내듯 거침없이 꺼낸다. 아찔한 내 심정은 아랑곳없이. 주변을 긁고 잇몸을 칼로 가르고 헤집어도 어쩔 수 없다. 뼛속을 파고 드는 쇳소리. 오금이 저려 무심간에 엉덩이를 들었다 놓았다. 주먹을 으스러져라 쥐어도 눈을 감아도 피할 수 없는 고문. 심심하면 옆에서 식염수를 치익치익 뿌려대는 간호사. 눈이 동그랗고 이마가 야무지더만, 의외로 가학적 취미를 감추고 있는지도 몰라. 재미있는 듯 내려다보다가 내가 눈뜨면 모른 척 샐쭉하다.

업무는 늘어져 진행되는 듯하다가도 목에 차면 숨이 넘어간다. 그런 참에 공석이 생겼다. 얼른 채워야지. 도처에 사람이 널렸다지만 막상 구하려면 마땅찮다. 낙타를 바늘구멍에 들이듯 안을 까뒤집어 눈을 크게 뜨고 꼼꼼하게 살펴본다. 면접 상대가 와 있는 걸 깜박했다. 옆에서 일러줘서야 아연하여 서두른다. 핑게가 아니라 이가 아파 만사휴의 열손재배하고 있었다. 난감하다. 습관적으로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는데 엉망이다. 통증으로 생각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진 지 오래, 집중이 안된다. 발음은 입안에서 뭉개지고,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이를 수습하려다 보니 말이 엇나간다. 아파서 찡그리면 상대는 긴장하여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을 지경이 되었다. 양해를 구하고서는 서둘러 마쳤다. 사람들 반응은 이상하다. 눈치를 보고 결과를 짐작한다. 선택의 범주에서 벗어난 걸 알았을까. 고양이 앞 쥐처럼 조심스럽던 사람 태도가 돌변했다. 슬쩍 덧붙인 질문에 답변이 도발적이다. '그건 아까 물어 보셨잖아요?' 외면하며 얼른 일어서고 싶지만 그런 식으로 막을 내릴 수는 없다. 명색이 조직을 대변하려면 근엄해야지. 앞서 많은 이가 이런 경우를 경험했겠지. 어떻게 해야 할까. 본심을 억누를까, 아니면 질책할까. 다시 앉히고 이것저것 일러준들 먹히기나 할까. 한편으로는 진작 함께 한 동료를 떠올린다. 심혈을 기울여 가르쳐 놓았더니 떠났다. 절룩이는 길가 바둑이를 보고 서리태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던, 사뭇 감성적이면서도 일처리가 매끈하던 사람. 대신 누구를 앉힌들 그 자리가 메꾸어지기는 어렵다. 새로운 이를 마음에 받아들이고 업무를 맡기려면 또 얼마나 오랜 동안 애정을 쏟아야 하나. 생각이 가지를 쳐 벋어나자 문득 살이가 하찮다. 결국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별 의미 없는 일들만 나열해야 하다니.
걸음 중에 맞닥뜨리는 수 많은 모퉁이. 내게 수호천사가 있어 문제 없이 인도한다고 믿었다. 발길 닿는 대로 기꺼이 따라간다면 훨씬 좋아지고 달라지리라 여겼건만. 이미 저기는 가을자리. 우리는 또 어디로 걸음을 서두르나.












An Angel * Allpa Kall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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