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마당

노래 세상

*garden 2010. 12. 3. 11:12




동생네와 함께하는 자리. 소문난 고깃집이어서 북적인다. 굽고 씹으며 떠들썩한 가운데 술도 들이켰다. 기분이 고조된다. 분위기를 먼저 알아채는 아이들. 이구동성으로 소리친다.
우리 노래방에 가요.
어, 그래? 노래들을 하고픈 모양이구나.
썩 좋아할 수 없어도 내색 말아야지. 어둡고 쿰쿰한 냄새에 절어 있으며 조명은 유치하여 둘러보면 게름칙하다. 이에 상관없이 아이들은 신났다. 먼저 노래를 부르겠다고 티격태격하더니 우격다짐으로 버틴 조카가 첫째 번으로 선곡한다. 천장 조명이 돌아간다. 속주로 작렬하는 전자음, 빠른 템포에 맞춰 방안을 헤집으며 고래고래 소리치는 꼬마. 너와 난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연. 그래도 울지 않으마. 기꺼이 널 보낼테니 부디 행복하라는, 애절하지만 전혀 애절하지 않게 노래가 그쳤다. 헌데 마이크를 넘기는 대신 이 녀석이 또 다른 노래 번호를 성큼 누른다. 안보고도 번호를 외울 정도라니. 우리는 찡긋, 눈으로 신호하며 웃었다. 이번에는 랩이 섞인 가사를 원활치 않은 혀놀림으로 불분명하게 따라 가던 녀석이 오 예, 하고는 덜컥 의자에도 올라가 가장 멋들어지다고 생각되는 폼으로 얼떨떨하기만 한 노래를 매조지한다. 어른들이 낄낄대며 손뼉을 쳤다. 그래도 마이크를 놓을 기색이 없다. 울상인 다른 아이들은 염두에도 없이. 눈치를 보던 동생이 결국 한대 쥐어 박은 다음 빼앗았다. 대뜸 내게 오는 마이크. 먼저 노래를 하시라는데 멋적어 손사래를 친다. 대신 우리 꼬마가 잽싸게 나섰다. 동갑내기여도 얘는 차원이 달라 동요만 할 줄 안다.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 빙글거리던 동생이 잘한다, 추임새를 넣으며 고개로 자기 아이를 가리킨다.
저 녀석은 애다운 데가 없네. 대중가요만 불러대니, 날라리도 아니고 원.
웃으며 장단을 맞추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동요라니. 허우적대던 손짓을 멈춘다. 제 형에 대해 깍듯한 동생을 쳐다본다. 사실 우리야말로 자라면서 예능 흉내를 낼 수 없었다. 당연히 이런 방면에 익숙하지 않다. 어릴 적 저녁을 물리고 대청에서 열리던 즉석무대. 동백 아가씨라도 괜찮게 불러 귀염을 받던 꼬맹이는 따로 있었다.
얼마 전에 내려갔더니, 대학생이 된 조카는 큰아버지 앞에서 어릴 적 모습은 간곳없이, 아르페지오로 드뷔시의 달빛을 근사하게 뜯었다. 군문에서 쫓아나온 우리 아이는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노래방에 가서는 제 아비가 부르는 쌍팔년도 대중가요를 빠뜨림없이 웅얼웅얼 따라 불렀다.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 굳이 연말 송년회 자리가 아니라도 자연스럽게 나서서 부르는 노래. 카수 송창식이나 김세환처럼은 아니어도 발성하면 성심을 다한 노래에 다들 감미롭게 젖는 노래. 아닌 게 아니라 생뚱맞은 기억도 있다. 헛기침으로 시작하던 노래. 도무지 감정은 잡히지 않고 떨리던 목소리. 호흡도 불안하여 늘여야 하는 대목에서 서두르다가 끊겨서는 박자를 놓치고 어색하다. 노래방에서만 불러 화면 가사가 없으면 허둥댄다. 이러진 않았는데 말야. 탄식하며 목에서만 겨우 짜내는 노래에 낯 붉어진다.
한겨울 연탄불 같은 노래를 불러야지. 훈훈해지는 게 시간 문제이도록 말야. 당연히 투박한 날들마저 나중에는 소중한 보물로 기억될 건 뻔할 터이지.














Phil Coulter, Whispering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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