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길면 반백 년 쯤이야 거뜬하여 백수를 누릴 것이고, 짧으면 지금 일어서서 저 문 앞을 나서다가 불현듯 죽을 수도 있다. 이는 내 삶을 내가 모르며 내 죽음을 내가 관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들아, 딸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후 한나절을 보냈다. 거실에 비스듬히 찾아 든 노란 햇빛이 발등을 간지르다가 한뼘씩 건너가는 것을 느꼈다. 아이가 고함 소리를 내며 지나기도 하고, 자동차가 붕붕거리는 기척도 듣는다. 꽃이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레 열리는 것도 보았다. 무릇 기억에 있던 것들이 자취 없음에 탄식도 한다. 허나 생이란 그런 거지. 유한할 수밖에 없으니. 혹시라도 내가 남아 있다면 마땅히 너희들에게 도리를 다 할 것이다. 하지만 일찍 스러질 때를 대비해 한마디 해 놓지 않을 수 없구나. 이미 살 만큼 살았다. 세상 이치를 다 헤아릴 수야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고 싶은 일을 주저한 적도 드물다. 살아온 걸음에 대해 주절주절 나열하고 싶은 것은 없다. 기우로 두어 가지를 부탁하고 싶다.
너희들에게 내가 남기는 것은 없다. 하지만 세상에서 어떻게 서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떳떳한가에 대해선 누차 말하며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오히려 가치를 두어야 할 때가 있다. 그게 무엇인지 찾아 늘 마음에 여미고 간직하여라.
아울러 화목하게 지내라. 세상엔 오직 너희 둘 뿐이다.
나에 대해서이다. 묏자리에 쓴다고 땅을 사 둘 필요는 없다. 봉분을 쌓을 일도 없이 화장한 다음 뿌려라. 숲과 바람과 햇빛 속에서 머뭇거리다가 안개처럼 떠돌며 만행 끝에 사그라지도록.
행여 꽃같이 다가올 너희들의 아이에겐 평소의 이 아비처럼 행동하여 직접 보여 주거라. 오후의 누그러뜨려진 햇살이나 늦은 아침까지 남은 별빛을 보면 내가 웃던 모습을 기억해라. 처음에는 서러운 생각도 들겠지만 차츰 괜찮아질 것이다. 행여 다음 세상이 있다면 우리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이 아비도 너희가 탈없이 잘지내도록 돌봐줄 것이다.
세상이 우리를 이어준 것처럼 너희도 세상이 이어주는 것을 고맙게 받아라. 잘살아다오. 할 수 있다면 이 아비를 기억하는 모든 이에게 정성어린 고마움을 기꺼이 전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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