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마당

어디서 와서는

*garden 2011. 8. 30. 12:02




갓난아기일 적 사진을 들추다 말고 아이가 웃었다.
제게 이런 때가 있었다는 게 실감나지 않아요.
사진이 말하잖니? 그때 네게서 얻는 위안이 어디 비길 데가 없더라만서도.
갓난아기이던 아이가 한밤에 깨어서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눈을 뜨면 매일을 하루같이 긴장하고, 숨이 목에 차도 쉴새없이 뛰어야 하는 팔자. 숙면을 원하는지라 잠이 깨고서도 가만히 있었다. 어렴풋한 불빛이 감지된다. 실타래가 풀리듯 쫓아나오는 아이 울음이 도무지 그치지 않았다. 곯아떨어진 아이 엄마는 깰 기미가 없고. 아니면 그만한 울음 소리 쯤이야 아무렇지 않다고 여기는 걸까. 마지못해 일어난다. 흩뜨러진 방 안 풍경이 차츰 명료해진다. 요람 속을 들여다 보았다. 앙증맞은 손을 빨면서, 아이가 눈을 깜박인다. 유리 컵 안에 쟁인 듯한 울음을 그친 대신 흐느낌을 이으며. 선물처럼 온 너. 아련함부터 일었다. 내가 웃었다. 이를 드러내고 방긋. 눈물어린 까만 눈동자가 커진다. 별안간 아이가 더 큰 울음소리를 냈다. 이런, 제 아빠가 낯선가. 말매미가 울 때처럼 후덥지근한 공기가 팽배해 있다. 아이를 안아 올렸다. 자자, 그쳐야지. 함께 일어나는 젖과 파우더 냄새. 얼르며 우윳병을 찾았다. 지나버린 시간처럼 포대기 사이에 나동그라져 있는 빈 우윳병. 나를 전혀 모르겠다는 듯 계속 악을 써대는 아이가 야속하다. 밤이 산산조각난다.

우리는 진작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는 눈을 감으면 서로의 태생 별을 떠올리며 그린다고 여겼는데, 이리 데면데면 하다니. 혹은, 진작 남 모르는 존재였는가. 내가 이 세상에 익숙해져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할 적에 그나마 네가 일말의 기억이라도 갖고 있다면 일깨워줄 줄 알았는데 이리 울기만 해서야 될까. 다시 생각해 보자. 이것저것 지우고서라도 서로 눈을 맞추어 생의 한 자락을 쌓아 올려서는, 어느 때 햇빛 좋은 마당애 앉아 그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지 않을까.

주변 모든 게 원래 예정된 일인 듯하다.
봄날의 꽃을 지우고서도 향기를 품은 아름다운 저 목련의 자태. 굉음을 내는 아파트 공사장의 소음. 산재한 두서없는 골목길과 허름한 가옥들의 조합. 환자복을 하고서는 잇몸을 드러내며 웃는 전봇대 옆 구부정한 할아버지. 차창을 내리고는 밖을 기웃거리는 이마 선이 고운 여인네. 과일 바구니를 들고는 환한 웃음을 흘리며 가는 경쾌한 소녀의 걸음걸이. 내 옆을 지금 오토바이로 휙 지나친 배달에 바쁜 청년의 난삽한 동선. 산책 나와 눈부신 햇살을 가리며 웃는 모자. 엄마 손을 벗어나 비로소 제 걸음으로 뒤뚱거리며 나를 보는 아가, 너는 또 누구인가.
눈을 끔벅이며 세상을 보았다. 아침 안개가 주변을 몽롱하게 가렸다. 이 생의 이 시각이야말로 언제 다시 떠올릴 수나 있으려나.












Elijah Bossenbroek, Song Of Simpli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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