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마당

길과 영원 속

*garden 2011. 9. 30. 14:10





All the leaves are brown And the sky is grey
I've been for a walk on a winter's day
I'd be safe and warm If I was in L.A.
California dreaming on such a winter's day

익숙한 가락에 맞춰 건들거리며 자리를 찾는다. 바람에 묻어오는 신명에 다들 우쭐하다.
야, 너도 왔구나!
그러는 너는, 못본 사이에 좀 여윈 것 같네.
손바닥을 마주치고 서로 부둥켜 안자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다. 아아, 희끗한 귀밑 머리카락에 돋아난 세월이나 달착지근한 냄새에 눈을 감았다. 우리 처음 만난 날이 언제였던가. 햇빛 아래 곧게 열린 신작로를 걸으며 쫑알거린 기억만 있는데, 다음 날 만날 것처럼 정류장에서 각기 다른 노선 버스로 갈라진 것처럼 헤어졌었다.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는 물살도 있었지. 걸음을 막던 구비구비 거센 물길을 건너 이렇게 만났구나. 노랫소리가 차츰 커졌다.

If I didn't tell her I could leave today California dreaming

자연으로의 회귀를 꿈꾸며 오직 평화만을 갈구하던 시절. 단단한 껍질에 쌓여 깨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기성사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판치던, 극단적 자유주의마저 꾀하던 Flower Movement의 일환으로 부르던 노래 중 하나. 추운 동부를 떠날거야. 황량해도 서부 해안의 따뜻한 곳이면 좋아. 열차가 움직인다. 가을날 메마른 이끼처럼 손을 쳐들었다. 시끄러워졌다.
다시 한 번 더!
환호 뒤 앵콜이 따른다. 분홍색 채플린 페도라 모자를 쓴 희자가 일어서서 캐스 엘리옷처럼 커다란 엉덩이를 흔들며 스텝을 밟았다.
쟤도 어느새 살집이 많이 붙었네.
나잇살을 먹어서 그렇지.
나이야 숫자에 불과한 거 아냐?
목청을 드높이며 다들 손뼉을 맞춘다. 후끈 달아올랐다.

대체 캘리포니아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얘는, 지금 그런 게 중요해? 이렇게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좋아.
마음이 비어 허허로운 이나 세상을 잃어 눈물겨운 이도 있을거다. 간절한 기다림으로 밤을 새워 발개진 눈을 뜨지 못하는 이도 있겠지. 아픔이나 눈물 따윈 덮어둬야지. 드디어 한쪽에선 무리를 지어 스크럼을 짜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한때 즐겨 부르던 노래들이 굴비 두릅처럼 엮여 나온다. 경쾌한 통기타 소리가 어우러졌다. 차창에 어리는 이미 다른 색감의 계절. 이제 몇 번의 비가 적시겠지. 성하던 나무들의 푸르름이 지워지도록. 황금빛 몸살로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할 준비도 해야지. 금방 간이역이 나타날 것이다. 익숙한 얼굴들은 눈물을 머금으며 내리겠지. 새로운 사람들이 빈 자리를 채우겠지만 알게 뭐야. 오래된 친구들과 캘리포니아까지 함께 갈 수 없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어. 손아귀에 움켜쥔 모래알처럼 시간이 흐른 다음 이 열차에 우리 중 몇이나 남을 수 있나를 생각하면 슬퍼. 노랫소리가 느린 템포로 바뀌면서 잦아들고 있어. 나도 한숨 자둬야지. 손 좀 줘봐. 자는 동안 네가 가버릴까봐 마음이 놓이지 않아.















Alexander Desplat, The Meadow(New Moon Sound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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