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하게 서지 못하던 적 이야기이지. 뿌리 내리지 못한 발로 엉거주춤한 나를 걸려 개울가에 나선 어머니. 빨랫감만 잔뜩 쏟아 놓고 서성이기만 한다. 풍성한 치맛단에 감기는 이른 봄날 햇빛이 보약 같다. 온 동네 처자가 죄다 나와선 장터처럼 시끌거린다. 와중에 웃음소리가 간드러지고. 빨랫방망이를 휘두르다 말고 감탄하면서 재잘거림을 멈추고 일부는 땟국물 덕지덕지 앉은 버선을 벗었다. 말간 시냇물이 담근 종아리 맨살을 쓰다듬고 지난다. 처자들이 희열에 찬 신음성을 한꺼번에 냈다. 어머니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흘겼다. 냇둑에 웅크린 나무에 다가간다. 연초록 물기 오르는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빨랫감 사이에 슬쩍 숨겼다.
나뭇가지는 끝자락이 마드매되어 부엌 선반에 올려졌다. 옹이가 떨어져 나갈 듯 볼품없던 선반에 터억 놓인 생기. 높은 문턱이 아득하다. 내려서지 못하고 문고리를 덜컥대며 볼 적이면 산란한 햇살 조각들이 투박한 유리병을 훑고서는 나뭇가지를 매만지다가 내 눈을 쏘았다. 나뭇가지가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뿌연 병 속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리저리 용을 쓴다. 매끈한 아랫도리에 꼬물꼬물한 실뿌리가 새살처럼 돋아난다.
내가 더 멀리 보려고 뒤뚱뒤뚱 걸어나갈 때 단단해진 나뭇가지는 부드러운 흙에 감싸여 조그만 화분에 옮겨졌다. 초록 잎이 한둘씩 뿜어져 나오고 새 가지들이 쑥쑥 튀어나왔다. 어느 해에는 연분홍 꽃을 오롯하게 터뜨리는 요술도 부린다. 버드나무인가 했더니, 유도화라는 나무는 그렇게 함께 자랐다. 몇 해가 지나 내가 학교에 들자 아버지는 유도화 화분을 파훼했다. 무성한 삶을 지탱하던 풍성한 뿌리가 드러났다. 송판을 어슷하게 붙인 사각화분을 만들어 꽃나무를 옮겼다. 또한 하루에도 열 길씩 자라는 가지를 틀고 묶어서는 한아름이게 만들었다. 어느 때부터 몇 번 이사를 했다. 그럴 때에도 몇몇 화분은 식구처럼 따라 다녔다. 물론 개중 유도화도 빠질 수 없었다. 진딧물이 팔에 잔뜩 붙어 못살게 구는 적도 있었다. 그래도 나무는 나만큼 꼿꼿해서 시들거리는 법이 없었다.
외지에 나갔다가 훌쩍 다니러 갈 적이면, 여느 식구처럼 문간에서 햇빛을 쪼이다가 빙긋 웃는 유도화. 지난 것에 눈길을 두지 못했다. 신경 쓰이는 곳도 많고. 꽃이야 어머니가 갈무리하면 되었다. 물을 주다 말고 물조리개를 들며 이쪽을 보는 어머니.
"이 유도화가 너만큼 살았을 게다."
"저도 알아요, 인제 식구처럼 여겨지는 걸요."
있는 듯 없는 듯해서인지 별반 가지 않은 눈길을 시큰둥하게 돌린다.
어머니를 여읜 다음 몇 번 꽃나무를 떠올렸지만 그렇게 있겠거니 싶어 별도로 알아보지 않았다. 그러다가는 설악 봉정암에 오르게 되었다. 허덕거리는 와중에 가파른 골짜기에 서있는 버드나무 형태가 익숙하다. 우리 유도화일 리는 없겠거니 하며 지나친 적 있다.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봉정사에 다녀 온 얘기를 꺼내면서 문득 유도화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근데 이상하다. 집안 물건을 챙기는데 유난한 식구들 중 아무도 그 유도화에 대해서 모르는 게 아닌가. 이런저런 말이 쫓아 나온다. 종합하여 정리하자면 어머니가 가실 적 유도화도 감쪽같이 없어졌다는 얘기인데, 그게 가당한 말이어야지. 나무가 저 혼자 쫓아나갈 수 있나.
가끔 꿈에서 본다. 내 발에 뿌리가 내려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에 나무가 발을 떼어 꾸역꾸역 산을 오르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