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습관의 창

*garden 2010. 8. 30. 17:03




유난히 견디기 힘들던 여름. 폭염과 열대야로 대변되던 그 기세를 도무지 꺾을 수 없더라니. 비 그친 날 아침 맨살에 묻어나는 공기를 매만지며 무심코 뱉는 한숨. 다들 비로소 편안하게 되었다. 일과를 준비하며 다른 계절을 떠올리다가는 아이들 방을 슬쩍 들여다본다. 젊은 날의 한때처럼 역시나 잠에서 헤어나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시간. 애처롭지만 어떡하랴. 너희들이 억지로라도 넘어가야 할 과정이니.
맞은편 창이 풋풋하게 떠오른다. 그림처럼 단조로운 창 안 풍경. 봄여름이면 푸릇푸릇하고 가을 무렵 울긋불긋 옷을 갈아 입었다가 겨울 흰눈 속에 가라앉는 도봉 자태가 사시사철 박혀 있다. 눈을 감으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천길 낭떠러지. 가까이서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볼 적이면 오금이 저리기만 하던, 선인봉과 만장봉으로 넘어가는 낙조가 일품이다. 아이들이 부재중일 때면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도봉 능선을 더듬던 시간도 제법 있다. 그러다가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걸핏하면 투신하는 아이들 기사가 눈에 띄더라만. 혹여 내 다그침에 울컥하여 감정에 치우친 아이들이 창 아래를 내려다보는 적이 없을까 싶어 시건장치 등을 확인한다.
나는 언제 어른이 되었던가. 자부심을 새기며 어깨에 힘을 주게 되었을 땐 세상이 만만했는데. 똑바로 길을 걷는다고 여길 적에도 잔소리를 그치지 않던 어머니. 당신이 가신 뒤에도 잔소리는 남아 기회 있을 때마다 귓가에 쟁얼거렸는데. 어느덧 당신보다 더한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살게 되었다. 군복을 입은 마지막 모습이라고 큰녀석이 의젓하게 회사 근방에 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저녁을 먹여서는 데리고 들어온 순간부터 수가 틀린다. 군화를 벗고 들어선 자리에서부터 소라가 껍질만 남긴 것처럼 벗어 둔 바지하며, 물 마신 컵을 몇 개나 식탁에 늘어두고 수염이 거뭇하게 난 녀석이 과자 봉지일랑 사방에 흩어두는 꼴이라니. 대체 요즘 군에선 군기교육을 어떻게 하길래 전역하는 순간부터 저모양일까.

글줄에 골몰하다가는 후드득대며 시끄러운 장대비 소리를 들었다. 지체없이 전화기를 든다. 도봉이 보이는 창을 열어 두기 일쑤인데, 비가 흩날려 들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책상에 늘어둔 책은 물론이거니와 아래쪽에 접속 소켓이 있어 삐져나온 전선이 엉켜 있는지라 물기에 합선이라도 되면 어떡하나. 잔소리가 줄을 서 전선을 타고 쫓아간다. 밥은 먹었느냐 책은 읽느냐 동생과 싸우지 않았느냐 네 앞길은 이제 아빠가 간섭할 게 아니니 알아서 하도록 해라. 참, 비가 오는데 창은 닫았느냐? 확인하다가는 스스로에게 실소를 머금는다. 걱정을 이고 다니면서 풀어 놓는다더니. 이게 얼마나 효능이 있을까. 외려 만성적 잔소리에 주눅이 들기는커녕 반응마저 무뎌지면 어쩌나. 큰 사고를 바라지야 않지만 차라리 물이 들어 일을 치뤄내더라도 거기서 얻는 교육효과가 더 크지 않을까. 노파심을 발휘하여 온통 기억에 있는 대로의 철조망 안에 집어넣어둬야 온전하다고 여기는 자신이 가소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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