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악이 대세이다

*garden 2010. 9. 2. 15:37




사필귀정이라고?
어른들이 무심코 흘리던 말. 당연히 그리 되리라, 모두가 두말없이 믿는 진리이다. 콩쥐팥쥐전에서 보는 것처럼, 갖가지 흉계로 점철된 가시밭길을 꾸역꾸역 지나 비로소 우뚝 서게 되는 반전의 결말. 응징을 받은 악이 마침내 처절하게 무너지고 선이 자리잡는 것을 보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터뜨리던 환성. 사람들은 응당 꿈에서라도 팥쥐가 되기를 거부한다. 한편으로 당하기만 하면서도 다시 빌미를 제공하는 콩쥐의 답답함에는 가슴을 친다.
티브이에서는 날마다 콩쥐팥쥐전이 끊이지 않는다. 콩쥐역은 최진실이 맡았다가 송윤아가 맡기도 하고, 김희선이 낙점되기도 한다. 콩쥐의 험난한 여정에 동행한 우리 누이나 어머니들은 저녁상을 물린 이후 이슥한 시간이면 함께 서러워하여 한숨을 뱉고 눈물을 찍어내며 자기 처지를 비하시키고 한탄한다. 또 다른 면으로는 나락에서 자기 위안으로 힘을 얻으며 꿋꿋함을 되새기기도 한다. 앞으로 좋아진다면 이도 감수해야지. 콩쥐에게 서광이 주어지는 것처럼 자기에게도 반드시 서광이 비추리라 기대한다.
어릴 적 바깥에 나가 얻어터지고 와서는 분한 마음에 눈물을 뚝뚝 흘린 적이 있다. 자초지종을 캔 어머니가 다독인다.
'네가 참아라, 참으면 나중 능히 모든 걸 이길 수 있다.'
며칠 뒤 밖에서 다투다가는 화를 참지 못해 누군가를 때렸다. 그 아이와 엄마가 달려와서는 어머니께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이들 앞에서 어머니는 나를 혼낸다. 내앞 고난이 '콩쥐의 선'처럼 진작 주어진 조건 과정이기를 바라다가 갸웃거린다.


무엇을 선이라 하는가, 악은 어떻게 구현되는가. 선과 악의 경계는 어디인가. 세상 일을 꼭 선과 악으로 나누어야만 하는지.
물질이 지배하는 세상. 돈이 없으면 노동으로 대신하여 이에 상응하는 돈의 일부를 얻는다. 돈을 가진 사람은 노동을 빌미로 자기 돈을 뜯어가는 사람을 악으로 대한다. 노동을 제공할 수밖에 어쩔 수 없는 사람은 돈으로 더 많은 돈을 취하는 사람들을 악으로 규정한다. 싸움이 날이면 날마다 그치지 않는다.
북적이는 전동차에 서있었더니 앞자리가 빈다. 앉을 생각이 없었다. 헌데 뒤에서 빈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누군가가 쫓아나오려다 보니 가로막은 내가 미운지 거칠게 밀친다. 버티고 있으려고 해도 부득부득 나오는데, 오기가 일어 앉아 버렸다. 땀으로 범벅된 아주머니가 비로소 보인다. 힘겨운 건 다들 마찬가지. 볼살에 덕지덕지 붙은 욕심이 눈꼴시어 볼 수 없다. 내가 선이고 그 아주머니가 악인가. 선은 선다울 때 빛난다. 가치를 높이고 치장하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저만큼 지짓대를 못잡아 비틀거리는 할머니가 마침 보인다. 손짓하며 일어섰다. '여기 앉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엉거주춤한 나를 대신해 악의 현신인 아주머니가 냉큼 앉았다. 역시 세상의 악은 계속 악이기를 바라며 행동한다. 왜 악은 근절되지 않을까. 악을 악으로 갚거나 힘을 힘으로 대항해서는 천년하세월이라고 했지만 닥달하기도 버거워서는, 마른 하늘에 벼락이라도 치기를 바라는 내 마음과는 달리 악은 가쁜 숨결을 가라앉히며 눈까지 슬며시 감는 게 마냥 편안해져 간다. 악의 몰락을 간절히 바라더라도 그런 기미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악이 선이고, 선이 악이어서 뒤엉킨 채 서로 꼬리를 물며 지탱하고 있다. 밋밋하여 재미없는 선보다는 차라리 악이 나은가. 되집어보면 세상을 지배하는 건 악인지도 모른다. 만천하에 드러나기 전까지 악은 절대 자기를 악이라고 하지 않았다. 사실은 자기를 선이라 정의한 것조차 알고보면 악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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