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건 왜인가. 견디기 어려운 게 무언가. 가라앉아 있는 텁텁함도 그렇지만 왜 바람마저 통하지 않을까. 창이라도 열어야지. 환기를 하려는데, 바닥에서 알루미늄 샷시 긁히는 소리가 유난스럽다. 시선을 바깥쪽에 두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가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 어랏, 저 이가 여긴 왠일일까. 휘익~건달처럼 휘파람으로 사람을 세울 수는 없지. 목소리를 가다듬기도 전에 손짓부터 한다. 이봐요! 사무실 동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든다. 의아할 게다. 저 사람이 저리 소리칠 때도 있나? 하며. 이것저것 가릴 계제가 아니다. 목청을 돋운다. 이봐요! 다행히 지나던 이가 고개를 돌렸다. 기연가미연가 의심하더니 이윽고 환해졌다.
주름이 어디 있다고 자꾸 가릴까. 보이지도 않건만 과장되게 부각하는 건 습관이다. 수줍은 미소로 밝은 얼굴. 예전 고운 모습이 살아 있다고 해도 어떻게든 지난 세월을 숨기고 싶은 속내. 아이도 낳고 이런저런 살이에 지나쳤더니, 돌아 본 세월이 부끄러웠나. 기실은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미움으로 채운 적이 많을걸. 우리말이 오죽 어려워야지. 작성해오는 문안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그런가 했더니, 어법에 맞지 않은 게 태반. 맞춤법까지 예사로 틀려서는 일을 맡길 수 있어야지. 으름장도 놓고 핀잔에 타박에 사정을 하다가는 나중 체념도 얹어 공격해댄다. 애교스런 동작이 몸에 배었는데, 심지어는 그렇게 넘어가려는 행태도 싫다. 마감때까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나중 얘기로는 세면장에서 운 적도 많다. 지금도 그때처럼 치밀성이나 정확함을 요구하는 게 눈에 보이나 보다. 주눅부터 든다고 하니.
컴퓨터를 켜는데 인터넷 접속이 어렵다. 바이러스를 먹었는지, 아니면 회선상의 문제인지. 심지어는 휴일을 지내고 온 아침, 사무실 안 인터넷도 마찬가지이다. 전산책임자를 비롯하여 몇 사람이나 붙어 실랑이를 한다. 그게 한나절을 넘겨서도 해결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원인에 대해 어떻게 규명해야 할까.
어떤 이는 남편에게 보내는 사적인 문자메시지가 저장해 둔 지인들의 전화번호로 일제히 발송되었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연락이 와 사정을 묻는 바람에 이를 해명하다가는 지친다. 전화기를 꺼두어도 해결되지 않는다. 나중에서야 사단을 알고 아연실색한다. 항의해도 통신사에서는 심드렁하다. 기껏해야 부과된 통화료를 면제해주겠다는데. 분통을 터뜨린들 본인만 애닯다.
울그락불그락하는 이들 사정을 들으면 하나같이 그럴 듯하다. 허나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사람 일이란 게 조만간 앞을 알 수 없는 고리의 연속이라서,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있나. 그러거나 말거나 내 사유 안 우뚝하던 목련. 하루이틀 새 눈에 띄게 엽록소를 지우더니 이제 잎마저 성글다. 침묵으로 견디고서는 새봄에야 다시 채울게다. 우리가 나무일 수야 없다. 허나 나무처럼 가진 것 다 떨어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공통체 안에서 진정한 자유인으로 우뚝할 수 있을까.
Elizabeth Lamott, only For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