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길이 없어도 간다

*garden 2010. 12. 23. 07:18
























약속 장소에 먼저 와 있던 친구. 나를 보자 대뜸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른다. 화끈하다. 일순간에 시선이 내게 모였다. 대수롭잖게 한 손을 들었다만. 어느 때부터 값비싼 고어텍스 소재의 등산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 뿐이던데, 물들인 미제 사지 군복을 걸친 생경한 모습이라니. 끈을 채 매지 않아 헐렁한 군홧발로 뚜거덕뚜거덕 걸어와선 내 손을 덥썩 잡았다. 손바닥에 박힌 꺼끌한 못이 고단한 세월을 그대로 말한다. 주름잡힌 눈가에 맺힌 글썽글썽한 물기 때문에 괜히 철렁한다. 덩달아 목청을 높였다. 몇십 년만이지, 아마. 그럴 듯한 술집에서 한잔해야 되지 않겠냐면서 호기롭게 이끈다. 헌데 움직이는 내내 손을 놓지 않아 연인처럼 걸었다. 손바닥 가시가 비빌수록 날이 선다. 가시에 걸려 꼼짝 못하고 끌려가는 형국이 되었다.


미국 만화회사인 마블 코믹스에서 만든 슈퍼 영웅은 열 손가락을 넘는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캐릭터 아이언맨을 비롯하여 익히 알려진 헐크, 데어데블, 블레이드, 고스트라이더 등. 이외에도 친근한 스파이더맨도 있다. 여타의 영웅들이 마땅히 주어진 조건으로 두각을 보인다면, 스탠 리Stan Lee와 스티브 딕토Steve Ditko에 의해 만들어진 스파이더맨은 늘 가난에 치여 고뇌하는 현실적인 모습이어서 사람들이 더욱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만화를 원작으로 각색하여 영화화되어 3편까지 제작되었다. 사실 정체불명의 물질 심비오트에 감염되었다는 설정으로 폭력적이고 오만해진 검은 스파이더맨 베놈이 등장하는 마지막 편의 진행이 실망이었지만, 피터 파커로 분한 토비 맥과이어의 선량한 눈빛에 호감을 가진 이는 많을 것이다.
최근 브로드웨이에 올리려는 뮤지컬 '스파이더맨' 프리뷰 공연중 와이어가 끊어져 스턴트 배우가 척추를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육천오백만 달러나 되는 막대한 제작비를 둘러싼 갈등과 연이은 배우 부상 등으로 거미줄처럼 읽히고 설킨 이해관계를 풀 길 없다. 제대로 공연이 이루어질지도 의문이라고 한다.


밤이면 도시의 뒷골목으로 들어 불나비처럼 헤매는 군상. 답답해 견디지 못하는 것도 병이다. 사방이 벽이면 오히려 편안해져야 하는데 이는 바람 뿐이니. 그 너머 다른 세상을 볼 수 없을까. 벽을 넘어 길이 아닌들 가지 못할까. 동대입구역에서 수표교 아래를 지나 국립극장을 끼고 돌아 오르는 남산. 산이 아니라 섬이라 해도 좋다만서도, 살점이 헤체되어 뼈대만으로 드러나는 겨울. 우기지 않더라도 곳곳을 스파이더맨이 휘저었는지, 높은 곳으로 오르고 싶은 열망과 흔적을 쉽게 만날 수 있다.












Bandari, Melody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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