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라이더 헤거드의 '솔로몬 왕의 동굴'을 재미있게 읽은 적 있다. 교과서 이외의 책을 들고 있으면 혼났다. 부득불 구석진 다락에라도 숨어든다. 깜박이는 꼬마 백열등이 걱정스럽다. 불편한 자세를 바꾸면 삐걱대는 마룻바닥. 숨 죽여 주변 동정을 살핀다. 아프리카 쿠쿠아나 왕국에 숨겨진 보물에 관한 이야기로, 이를 찾으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헨리 공작의 동생을 찾아 나선 앨런의 모험담이다. 어찌어찌하여 땅속 깊은 석실에 갇힌 앨런 일행. 빠져 나갈 방도가 없다. 그 참에 사람들이 간절히 찾던 보물을 발견하고는 허겁지겁 달려들지만 이내 헛웃음이 난다. 목숨이 풍전등화인데 보물이 무슨 소용인가. 허나 때로 절망은 희망을 품고 있기도 하다. 촛불이 움찔거리는 것을 보고는 살피는 중에 찾은 통로. 바깥으로 통하는지, 아니면 사지로 가는지도 모르지만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도 없어 결심한다. 몸이 꽉 끼이는 캄캄한 석실을 벌레처럼 버둥버둥 기어 한나절이나 나가는 막막한 대목에서 책읽기를 멈춘다. 가슴에 손을 얹었다. 숨이 가빠 견딜 수 없다. 앨런처럼 땀이 범벅인 채 밑도 끝도 없는 암굴을 기어나가는 몸서리치는 경험. 그러다가 함정에 빠지면 그 때는 어떡할건가.
영화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에서 앤디 듀프레인 역의 팀 로빈스가 하수관를 타고 나와 천둥번개가 작렬하는 바깥 세상에서 웃옷을 찢던 대목을 보며 느끼던 후련함이라니.
여섯 살짜리 말레이곰 '꼬마'가 과천 서울대공원을 탈출했다. 아무리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지만 명색이 곰이지 않은가. 곰을 만나면 어떡해야 할까. 죽은 척 엎드려 있으면 과연 괜찮을까. 인근 청계산 입산이 통제된다. 가끔은 나도 햇빛을 헤치며 오르던 서울대공원 뒤쪽 가파른 산행 들머리나 양재 화물터미널 뒤쪽 밤나무 무성한 산길을 떠올렸다. 매봉이나 이수봉으로 오르는 늘 북적이는 길,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암릉도 그린다. 청계산 정상 부근에서 곰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꼬마'를 잡기 위해 경찰과 소방관계자 백여 명과 서울대공원 관계자 백이십 여명이 목격지점으로 황급히 이동하지만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 곰의 이동능력이 백 미터를 십초 전후로 달릴 만큼 빠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소방헬기와 십여 명의 엽사와 여덟 마리의 수색견까지 동원되었다는 소식에서는 일말의 동정심도 유발된다. 마땅히 야생이 본능인 동물을 가두고, 이도 모자라 갇히지 않겠다면 죽이려는 사람들 뻔뻔한 심뽀라니. 자유를 갈구한 댓가가 고작 죽음인가. 이는 비극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먹이를 제대로 구할 능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아니면 야성이라도 되살려 동면으로 깊숙한 곳에 틀어박혀 발견되지 않기나 하든지. 소방헬기까지 동원되어 쫓고 쫓기는 와중에서 꼬마 행방이 묘연하다는 대목에선 다들 쾌재를 부른다. 문득 주말에 만난, 청계산 기슭에서 한식집을 하는 젊은 시인은, 집들이 선물차 들고 간 어우러진 쌍학을 새긴 서각을 내려 놓으며 썩 만족스럽지 못한 웃음을 짓는다. 소동으로 주말께 풀린 입산금지도 소용없다나. 진작 예약마다 취소되었다면서 공친 시간이 억울하다. 왜 곰이 탈주했는가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섯 살짜리 꼬마에게 서른 살짜리 암컷 만순이와 짝짓기를 하라는데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이수봉 정상 포장마차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던 꼬마는 결국 먹이로 유인한 드럼통에 갇혀 붙잡혔다. 애태우는 와중에 비극적이지 않은 결말이 그나마 다행이다. 되돌아간 동물원에서 올려다 보는 하늘이 만족스러울까. 급박하게 떠돌더라도 자유롭기만 하던 바깥 세상을 꿈에라도 그릴런지.
큰애는 요즘 고민중이다. 해외에 생긴 일자리로. 막상 거기 접촉해 매듭을 지으려니 걱정이 앞선다. 추구하는 갖가지 일이 욱죈다. 포기하자니 아깝기 그지 없고, 주저앉아 있으려니 앞이 캄캄하다.
살아가는 일이 모두 창살이다. 아니, 눈을 돌리는 순간 갇히는 건 뻔한 노릇이어도 종종 사람들은 기꺼이 갇혀 있기를 자초하는 건 아닌지.
Daiqing Tana, Passed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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