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겨울 그 처음, 동백

*garden 2010. 12. 10. 10:23




먼지를 뒤집어 쓰고 구석에서 버틴 동백나무를 보았다. 한겨울 추위를 넘겨야 꽃이 아름답다지만 글쎄, 우선 기온이 맞지 않다. 잎 크기가 아랫녘보다 작을 뿐더러 꽃도 기대할 수 없다. 스무 살에 죽어 버린 고오띠에의 애처러운 삶을 겹쳐본다.
파리의 마들렌 성당 뒤편에 살았던 마르게리뜨 고오띠에Marguerite Gautire, 사교계의 화려함을 즐길 줄 아는 고급 창녀였다. 로열박스에 앉아 오페라를 감상하는 그녀의 고혹적인 모습에 뇌쇄된, 당시 방귀 꽤나 뀐다는 파리 남자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고오띠에의 가슴엔 늘 동백꽃이 꽂혀 있었는데 평소에는 흰 동백, 생리중에는 대담하게도 빨간 동백이었다.
이를 소재로 한 뒤마Dumas fils의 책 원제목이 La Dame aux camelias. 동백부인, 혹은 동백아가씨이지만 우리에게는 참죽나무 椿字를 써서 춘희椿姬로 소개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베르디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를 만들었다. '라 트라비아타'에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유난히 많다. 애간장을 녹일 듯 슬픈 '서곡'을 비롯하여, 1막 처음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 연이어지는 '아, 그대였던가'와 '꽃에서 꽃으로', 그리고 알프레도의 아버지가 부르는 '프로벤쟈 내 고향' 등은 놓칠 수 없는 아리아들이다. 라 트라비아타 중 '지난 날이여 안녕'을 깔아 두었다가 Hayley Westenra의 맑은 음성으로 바꾼다.


머뭇거리지 않고 떠나고 싶은 때. 내가 모르겠느냐만, 지금은 안돼!
휴일에도 출근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시간은 턱없이 모자라고 일은 진척 없으니 뾰족한 수가 있나. 날이 갑자기 추워졌다. 휴일에는 난방이 되지 않는 사무실에서 근육을 움츠린 채 견뎌야 했다. 그 바람에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디자이너 둘은 기별 없이 나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보겠다는 걸 말린다. 어떤 말을 덧붙이랴. 아이들 떼쓰는 것도 아니고, 여기가 놀이터인가. 온갖 기획을 마쳐야 하는 지금에야말로 사무실이 전쟁터이다. 책을 내용이나 레이아웃 등으로 펴는 시기가 아니다. 내용을 온라인으로 구축하고 연동하는 웹 컨텐츠까지 만들어야 하다 보니 일일이 이를 따붙이는 전문인력이 수도 없이 필요한 건 물론, 제작 시기가 빡빡한 건 말할 것도 없고, 투자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게 마련. 자연히 일이 지체되는 데 따른 독촉이나 질책 뿐 아니라 연관 업체들의 고발이나 소송까지, 별의별 행태가 난무한다. 저절로 나오는 탄식이나 욕설을 감출 수 없다. 예의를 차릴 수 없는 건 이미 한참 전부터. 아이 수능점수가 발표되었다는데, 이 녀석은 왜 말이 없어? 궁금해도 마구잡이로 쫓을 수 있어야지. 말을 꺼내기 전에 심호흡을 했다. 얼마 전까지도 넉넉한 품으로 가르랑거리던 목련은 홀가분하게 벗은 다음 겨울눈을 부풀린다. 눈발이 사납게 몰아쳤고 바람은 날을 세웠다. 종종걸음치는 사람들마다 귀와 입을 가리고 시선을 들지 않았다. 송년모임이라도 해야지, 함께 움직이던 트래킹팀들은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했다. 책상에 쌓인 청첩장이나 부지불식간에 받은 부고를 헤아렸다. 그 때 전화가 울렸다.
진작 그런 줄은 알았지만. 일과 결혼하지, 난 왜 끌어냈쑤?















Hayley Westenra, Heaven





'不平則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가두는 속박  (0) 2010.12.16
마음소  (0) 2010.12.13
조급한 달  (0) 2010.12.07
나, 여기 있소  (0) 2010.11.30
죽음을 꿈꾸는가  (0) 2010.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