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거기 산에서

*garden 2010. 12. 30. 15:36




악귀나찰처럼 달라붙는 추위. 사방을 조여 냉랭한 게 정신마저 얼얼하게 만든다. 바람 때문이라지. 체감온도가 영하 이십도 아래로 뚝 떨어졌다. 나오며 옷을 더 껴입으라고 그렇게 일러도 듣지 않더니. 모르는 체 놔둬볼까, 싶다가는 장갑을 껴도 시려운 손가락을 폈다쥔다. 꽁꽁 싸매고 지나는 이들이 미라같다. 아이를 불러 세웠다.
야, 이녀석아. 아무리 멋내기라도 그렇지. 지금 너처럼 하고 있는 사람이 어딨냐?
뻔한 잔소리라도 시작하자 습관적으로 줄줄 나온다. 여분으로 챙겨 온 목도리와 모자를 꺼내 어수룩하더라도 감싸준다. 추워서인지 다른 때에는 질색하는 녀석이 의외로 순순하다.


인적 드문 쪽을 들머리로 삼았건만 산행하는 이들이 곧잘 눈에 띈다. 근래 드물게 쾌청한 날씨. 말간 햇빛이 다소곳하게 뿌려진다. 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다복솔한 오솔길도 밟고 얼어붙어 부숭숭한 노간주나무도 지난다. 메마른 날이 계속되어 흙먼지 이는 땅. 낙엽이 지천인 구덩이를 조심해야 한다. 다리가 긴 아이가 앞서 성큼성큼 걸었다. 묵묵히 걷는데 돌아보는 아이. 예전처럼 앞에서 기다리며 끌어주던 아비가 아니어서 답답한가 보다.
저 이제 산도 잘 올라요.
빙그레 웃었더니, 자신이 꺼낸 말에 대한 책임 때문인지 더 열심히 올라가는 아이. 암릉을 딛고 서서 지난한 길을 돌아보았다. 장난감같은 자동차들이 꼬물거린다. 싸늘한 기운이 허공에서 우쭐거렸다. 밭은 숨이 입김으로 훅훅 뿜어져 시야를 가린다. 공룡처럼 주저앉아 퍼진 도시에도 숨구멍이 있는지, 곳곳에서 난방 연기를 퐁퐁 솟구쳤다. 바위를 앞에 두고 난감해하는 꼬마를 이끌어 올린다. 혼자 봉우리 몇 개를 거뜬히 넘을 것처럼 서두르더니 마음 뿐이다. 허긴 단번에 이루어지는 일은 허황하지. 산을 오르는 것도 인생길과 마찬가지이다. 구비구비 휘도는가 하면 군데군데 도사린 난관을 헤쳐 나아가야 한다. 경망스럽거나 날뛰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를 견뎌내려면 부단히 자기 안에서 스스로를 떠받히고 세우는 법을 익혀야지, 다른 길이 없다. 기회가 되어 호주쪽에 가 생활하겠다는 아이. 마음을 다잡았는지, 한 며칠 이것저것 정리하더니 드디어는 산에도 따라 나선다. 하지만 암릉이 거듭되자 투덜투덜댄다. 다 큰 녀석이 어린애처럼 왜 그러냐? 나무라기도 하며 앞서거니뒤서거니 오르는 산. 받아들임과 내 안에 든 걸 긍정적으로 삭여야 함을 배웠을까. 지난 봄 산길에 둥둥 떠다니던 민들레 홀씨처럼 나도 떠올랐다. 낯선 하늘 아래서 문득 그릴 수도 있을게다. 한겨울에 올랐던 예쁜 이 산하와 지 아비와의 단출하던 한때를.















Piano Princesss, Rej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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