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강을 따라 내려가는 연어

*garden 2011. 1. 11. 16:43





아이들에게 메뉴를 맡겼더니 가족 레스토랑 쿠폰을 뽑아오는 바람에 찾았다만 못마땅하다. 이질적인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하는 나. 일괄적인 음식에 익숙한데 여긴 제각각인 것도 성가시다. 가타부타 말을 늘어 놓는 건 직성에 맞지 않다. 이왕 들어왔으면 수긍하고 적응해야지. 그러고 보니 어느새 부쩍 자란 우리 꼬마들. 결정을 맡기지 않고 주장을 내세운다. 그렇게 몸사위를 키우고 보폭을 넓혀야지. 아까부터 부산스러운 옆자리에 눈길을 준다. 포크도 어질르고 두드리다가 컵을 던져 물을 엎지르기도 하는 서너 살짜리 꼬마.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 주변을 깜짝 놀라게도 만든다. 이래서야 새싹날치알샐러드인들 씹어 제맛을 느낄 수 없다. 불만이어서 사나운 눈짓을 건네지만 개의치 않는 아이 부모가 얄밉다. 외려 무표정한 여자에게 질린다. 창백하고 가는 긴 손가락으로 여자가 고기를 잘게 찢는다. 아이에게 먹이려다가도 심통을 부려 도리질을 하면 이내 거둔다. 무덤덤한 게 과연 좋은 건가. 다소곳하게 칼질하는 건너편 작은 녀석을 본다. 쟤도 고집이 만만찮아. 어릴 적엔 백화점 등에서 곧잘 드러누웠다.
그러면서 커가는 것 아닐까?
달래도 애들 엄마는 부아를 주체치 못해 낯이 붉그락푸그락했다. 사람들이 오가는 통로에서 떼를 쓰는 아이가 창피해 슬쩍 피한 다음 한참 후에 봐도 눈에 띄면 버둥거려 난처하다.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감당이 어렵다. 사 주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간단치 않다.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집요한 아이에 비해 오히려 단순한 어른. 어느 때 내가 동행했을 적에도 여지없이 아이는 드러누웠다. 혼내지 못할 줄 아나 부네. 오냐, 마침 잘만났다. 아이를 들어 저만큼 내동댕이쳤다. 다치지 않은 걸 확인했다. 그래도 놀랐을걸. 손을 털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나왔는데, 눈물 자국을 훔치는 채 따라오는 녀석을 설핏 본다.
생각 있는 고집이라면 아빠도 권장하마. 하지만 이기적인 고집이라면 들어 줄 수 없다.
타일러도 소용없다. 자랄수록 공고해져 인제는 고래 심줄보다 질긴 아이 고집. 학교를 선택하거나 학과를 고려하거나 간에 꺾이려 들지 않으니.
여자애가 저리 고집이 세니, 원. 다 제 애비 닮았지. 그게 어디서 왔겠어.
내 고집이 그렇게 센가. 허긴 옳다고 생각하면 결정을 되돌리거나 상대 말에 귀를 기울이는 법이 없다. 그러다가 손해를 보기도 한다. 뻔한 결과에도 고수해야 하는 억지. 나쁜 패를 들고도 버티는 어거지. 내 통찰 안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여긴 틀을 벗어나 움직이는 현실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사람들이 떼를 쓰면 불합리해도 통하는 사회 관행에도 갸웃거린다. 이래서야 옳고 그름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골목에서 담배를 물고 지나는 여학생을 세우려다가는 망설인다. 얼마나 더 싸우고 논쟁을 거듭해야 하나. 강요하고 거부하며 몰아붙이기에도 언필칭 지친다. 격렬한 독설로 상대를 제압하고는 불안정한 어조를 날리거나 자극적인 표현으로 위협하던 맹목적인 선동도 자제해야지. 나이 든 이의 독재나 횡포로 비쳐지면 곤란해. 그래도 아직 멀었다. 대화로 이해의 격차를 좁히고 합의를 이끌어내선 서로의 만족에 이르는 절차를 번거로워하기는 매한가지여서.















Brule, All My Relations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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