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사진으로 살펴보는 지표면. 클릭하자 확대된 산야의 속살이 적나라하다. 굽이쳐 흐르고 이어져 갈래갈래마다 쫓아나간 산맥의 형상. 깊이 들여다 보면 낯설고 어둡지만 단언할 수 있다. 저 어디쯤에서 이제까지 나도 헤매었으니. 서릿발 친 흙 속에서 우화등선의 꿈을 품고 꼬무락대는 벌레의 잠. 속 깊은 나무의 침침한 향기. 펼침이 싱그러운 바람. 가로막힌 돌멩이를 밀치며 활기차게 흐르고 싶은 생명수의 욕망 들. 하나같이 그립다.
휴일을 제대로 누릴 수 있어야지. 모름지기 겨울을 겨울답게 받아들일만한 여유가 없다. 가쁜 시간 결 안에 갇혀서는 안돼. 엉거주춤 일어나 매운 바람을 만져본다. 올올이 들어낸 생각의 갈래라도 정리해볼 겸 성큼성큼 내딛는 걸음. 마음만 앞설 뿐 더디다. 녹슨 듯 둔탁한 느낌의 관절. 가파른 산 오름이 미끄러워 쉽사리 나아가지지 않았다. 더구나 사진을 찍는다고 지체했더니 산행이 엉망이다. 일행과 뚝 떨어져 대열 후미에서 꼬물대는 무리. 억센 숨을 뱉어내며 서로를 살핀다. 은연중 면면을 확인하여 키우는 유대감. 한 굽이 오르고는 쉬고 또 한 굽이 올라 하늘과 산의 경계를 가늠한다.
이런 날 산행을 하다니 내가 미쳤지, 미쳤어.
벌써 땀나는 것 좀 봐. 웃옷이야 벗어도 되겠지요?
신발을 덜 조였나. 왜 이리 헐겁지?
이제껏 올라왔는 데도 아직 까마득해.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할까요?
먼저 올라 가세요. 가쁜 숨이 가라앉으면 따라 갈테니.
주저앉으면 산은 더 높아진다. 꼭 정상까지 가야만 하는지도 묻는다. 막연히 돌아보며 보폭을 살핀다. 묵묵부답으로 버티지만 안다. 대답이 필요해 이어가는 질문들이 아니다. 왜 가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면 가지 않아도 되는 당위성을 조목조목 들어낼 것이다.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해도 쉬이 맞장구를 치지 않을 것이다. 살아온 걸음에 고집이 배어 있어서 말을 받으면 상대적인 갈등의 파고만 높아질 따름. 아직은 안부에도 닿기 전이라 산의 흐름을 알 수 없다. 가도가도 막막한 구릉과 잡목림의 연속이어서 섣부른 예단이 어슬프다. 가만히 귀를 열어 둔다.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답을 바란다면 딱 잘라야지. 가지 않아도 된다. 허나 굳이 삶에 비유한다면 견디기 힘들거나 벅차도 넘어가야겠지. 희끗한 허공을 비켜 쌀알같은 눈이 내린다. 조금씩 나무를 덮고 산을 가린다. 지난 길을 지우고 가는 길을 막는다. 서두르면서도 느긋해졌다. 오래 참았다. 말을 해야 할 곳과 때에 맞는 적당한 말을 고르지 못해 고민하는 날이 버겁다. 확연히 나아져야 할텐데. 무엇을 했던가, 요지부동인 세상에서. 냉랭한 기운이 차라리 좋다. 낮게낮게 드러누웠다. 부글거리는 마음으로 세상을 끓일 수 있다면. 입을 벌리고 일어나는 나무. 바위가 속울음을 토해낸다. 얼음장 아래로 전해지는 푸르름의 기억. 계곡을 차고 올라 등성이에서 사방으로 흘러내렸다. 새날에는 기꺼이 입을 열어 그대에게 꽃 같은 말을 건낼 수 있을까. 저 산을 넘어 또다른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을까.
Elina, S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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