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무법자로 살 건가

*garden 2011. 1. 31. 15:10




소주가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한다는 여자가 방송에 출연했다.
참 이상한 게, 뉴스가 방송이 되어야 하는데 거꾸로 방송이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 또한, 다들 식사에 소주를 곁들이지 않는가. 이거야말로 깜인데, 왜들 그냥 넘어가는지. 여자라서 반주를 하면 안되는 걸까. 그렇다면 여자는 평소 주변 눈총을 어떻게 모면했을까. 습관적이라면 더 화제가 되는 건가. 상대적 비교치이지만 고령화 시대의 평균연령을 절반도 넘어서지 않았으므로 서른 중반의 나이도 술과 함께 거론하기에는 이르다. 그래도 십삼 년 동안 마신 소주가 이만여 병에 달한다고 했다. 정작 본인은 나름대로의 예藝도 갖고 있어, 소주만 마신다거나 많이 마신 날은 게운하며 다음 날 화장까지 잘받는다고 했다. 거기에 청순가련형이어서 보는 이를 열광케 한다.


시인 조지훈은 술도 교양이라고 했다. 주정으로 인품은 물론 주력까지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당연히 주도에 급수를 매긴다.
술을 아주 못먹거나 안먹는 사람을 부주不酒라 9급에 놓는다. 다음으로 외주畏酒, 민주閔酒, 은주隱酒, 상주商酒, 색주色酒, 수주睡酒를 지나 반주飯酒이니, 방송출연 여자는 이에 속할까. 그 위로 학주學酒, 애주愛酒, 기주耆酒, 탐주耽酒, 폭주暴酒, 장주長酒, 석주惜酒, 락주樂酒, 관주觀酒라는 반열이 있어 음주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고 했다. 술을 마시는 행태나 마신 다음의 몸가짐이 천차만별이어서 논하는 정도이니, 딱히 어디에 속한들 어떠랴. 이를 꼬치꼬치 따진다면 술꾼 자격 미달이다. 공자는 술을 마시면 취하지 않았을 때처럼 행동하기 어렵다고 했다. 취하면 화나는 것과 슬퍼지는 것, 조리가 없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으니 이를 늘 새기고 술자리에 임해야 할 것이다.


빗대 거론하기는 뭣하지만 내 술도 빠지지 않는 술인데 말야. 양이냐, 질이냐를 따지면 할 말 없다. 줄기차게 소주만 고집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인데, 왜 소주회사에서 표창 한번 하겠다는 전갈이 없는 걸까. 세미나를 위해 지방에 내려간 날 저녁 폭음은 예사이고, 다음 날 아침 상에서도 소주 두어 병을 시켰다. 둘러앉은 사람들이 입맛만 다신다. 눈치만 보는 것이 쉬이 넘어가지 않는 모양이다. 술을 남기는 것이야말로 주법에 맞지 않는다며 남은 술을 내가 꼴까닥 해치웠다. 점심때 다시 반주를 내왔는데 그것도 내가 비웠다. 저녁 되기 전 파한 참에 인사 겸 위로차 다시금 모였다. 두어 시간 전에 마신 술이 내려가지 않아 목구멍에서 꼬르락댄다. 일행을 독려한다. 돌아갈 참이니 이번에는 순한 술로 하지. 선술집 주방 안 풍경이 익숙하다.











Warren Hill, Desperado[Eag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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