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화분을 들어내다가

*garden 2011. 3. 2. 17:02




햇빛이 눈부시다. 빛살 아래 서자 가슴 속까지 훑는 트임이 있다. 이런 기분은 얼마만인가. 지나는 이들이 연신 눈을 가늘게 뜨고 웃음을 보인다. 봄인가. 그래도 조바심하면 안돼. 눈으로 볼 수 있기 전까지는, 손에 잡힐 때까지는 서두르지 말아야지.
긴장을 풀자. 신경을 누그러뜨리고 상체를 펴 뒤로 제쳤다. 천장이 바닥이 되고 바닥이 아득해졌다. 음악 소리를 높였어도 차츰 근질거리는 말초신경. 그새 못참아 일어났다. 창을 열어 한껏 바람을 챙긴다. 한겨울 내 구석에 도사린 화분을 끌어내 먼지도 떨고 물도 흠뻑 적셨다. 그래도 짧은 한나절. 햇빛은 아직 한줌도 되지 않아 애닯다. 별 수 없지. 날갯짓으로 떠오르려면 진작 내성이라도 길러야지. 바실리데스의 아브락사스abraasax가 아니라도 이왕 깨뜨려야 하는 필연적 전제도 들이대고, 동의라도 구할 수 있나 싶어 슬쩍 귀도 기울인다. 얘네들은 너무 점잖아. 지금쯤이면 이심전심, 마음으로라도 통할만하지 않나. 맨 가지로 버틴 묵묵함에 서운함을 새기려다가도 머리를 흔든다. 대신에 꺼진 화분 안을 살핀다. 수척한 흙덩이라도 어찌나 무거운지, 옮기는 궤적을 따라 녹슨 그네처럼 삐걱이는 내 관절. 아무려면 어때.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비명일지라도 너희들이 오롯히 깨어날 수 있다면. 조만간 새닢과 봉긋한 꽃망울로 나를 위해 고운 노래라도 한 소절 불러다오.
다영이에게 겨울은 견디기 힘든 막다른 골목이다. 무턱대고 나아가기도 돌아갈 수도 없는 여정. 걸음을 잇거나 멈추어도 불안하다. 허나 가야지. 다들 그렇게 시련을 이불 삼아 생기를 기다린다. 봄이 온다는 주변 호들갑에도 도무지 실감나지 않더니. 마룰라라도 두어 개 먹은 양 휘청이며 나선 걸음. 암묵 세상에서 쫓아나오기를 잘했어. 고단한 시간에 눌려 까무러쳐서는 끝없이 밀리는 파도를 마주하자 비로소 출렁대는 마음.













John Rhyman, 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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