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뿐사뿐 다가오는 맞은편 처녀, 상큼하기도 해라. 다름 아닌 것이 앙가슴에 꼬옥 품은 화분에 눈길이 간다. 보세란인가. 옆을 지날 때에는 숨을 멈추었다. 벼린 칼날처럼 날렵한 초록검을 감싼 선명한 노란 날. 햇빛이 찰랑거리는 난 잎에 얹혔다가는 베어지고 부서져 점점이 흩어진다. 지난 겨울이 아득하다. 그렇게 질기고 억세더니 비로소 흔적 없다. 불쑥 솟구친 아슬한 세 송이 꽃이 화사한 처녀 얼굴을 가리고 까딱거려 고개를 꼬아가며 바라보았다.
난데없이 허리께쯤이 허전하다. 허리띠가 풀리다니. 버클에 물린 가죽이 끊어진건가. 바쁜 걸음을 세우기도 난처하여 엉거주춤한다. 지나는 이들이 곁눈질한다. 부랴부랴 적당한 곳에서 살피는데 짐작대로이다. 임시방편으로라도 해진 자리를 뜯고 매듭 지은 다음 안쪽으로 물렸다. 그러자 욱죄어서 불편하다. 또한, 버클에 여분도 없이 허리띠 끝부분이 달랑 쫓아나와 자못 야박해 보이기도 한다. 사용하지 않는 허리띠가 집에 보이기야 하더라만 지금 맨 것과 달리 박음질된 형태라 조정할 수도 없고, 띠가 길어 허리를 한 바퀴 반이나 휘돌아 몇 번 착용하려다가는 포기했었는데. 튜턴족 전사만큼 버클에 자랑스런 관심을 쏟을 수야 없더라도 난감하다. 허리띠를 다시 장만해야 하나. 별 일도 아닌 데 온갖 생각이 머리를 쳐들고 일어난다. 허리띠나 신발, 넥타이 등은 부속품이면서도 마음에 안들면 내내 걸리적거리던데 어떡할까.
알 수 없는 불연속선의 연장에서 늘 갈등하는 우리. 순식간에 관심을 사로잡아 버리는 일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일은 내내 불편한 채로 동거하여 자칫 기분을 울적하게 내몰기도 한다. 이를 달관한 새옹은 진작 세사의 길흉화복은 예측이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고 새옹처럼 무덤덤하게 벌어진 일을 받아들이는 것도 옳지 못하다. 습관처럼 씨줄과 날줄을 빽빽하게 엮어 두어 올 하나라도 느슨해지면 몸을 바로 세우기가 어렵다. 가볍게 날뛸 수야 없지만 맑은 날이다가도 어쩔 수 없이 궂은 날에 들기도 한다. 늘 슬프지도 않지만 늘 행복하지도 않다. 딴은 기복이 잦다는 게 싫을 뿐이다.
기분 좋은 일은 봄날 같은가, 소녀가 맑은 난을 들고 지나치는 것처럼 가 버린다. 그런가 하면 삶이 때로는 맞지 않은 허리띠처럼 거북스러운 묶음으로 내내 조이기도 한다.
Secret Garden, Serenade To Sp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