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말의 싹

*garden 2011. 3. 17. 17:26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잘하는 일은 모든 것을 말로 해결하려 드는 것이다.
갖고 온 문서의 표제어가 이상하다. 도치법을 쓴 말머리가 가볍다고 했더니 대번에 짓는 한심스런 표정. 그래야 관심을 끌 수 있지 않냐고 외려 반문한다. 차근차근 풀어가는 정공법이 좋다고 재차 덧붙여도 부득부득 우긴다. 안정적인 게 무난하지만서도 어느 세월에 돋보일 수 있냐고 눈을 둥그렇게 뜨는데. 이런 때 난 지독한 보수주의자이고 상대는 그야말로 빛나는 진보주의자이다. 그러다가 모종의 일이 터져 사회 분위기가 심상찮다. 아니나 다를까, 쪼르르 쫓아와서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순서에 따라 정리하고 귀납하는 동치로 풀어 가겠단다. 도역倒逆이 산만스럽다던 내 의견은 오간 데 없고, 대신에 이러한 연역 방법이야말로 다른 데 비길 수 없다는 우월성에 대해 조목조목 나열한다.
말이 비처럼 내린다. 앞과 뒤가 같다는 고개, 전후치나 배후령처럼 듣고 있으면 고개 끄덕여지는 수긍의 화법. 말을 듣는 대신 열변을 토하고 있는 사람의 부르튼 입술을 바라본다. 거침없는 말이 누에가 비단실을 뽑듯 좔좔 쫓아나와 내 앞에 수북하다. 이 사람은 집요하다. 상대 말 자르기를 밥 먹듯 하고 내가 할 대답까지 자기가 대신하며, 제가 밉죠?를 열 번은 되풀이하면서 의견을 관철하려고 따라 다닌다. 물리치고는 눈을 감았다.


머리는 바보라고 했다. 인식된 가설만 기억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입으로 말을 뱉어내 이를 씹고서야 자기최면에 걸려 사실로 받아들인다. 만사가 귀찮아 노곤한 밤. 무언가를 찾겠다고 서가를 뒤적이다가 동작이 작아졌다. 피곤하면 순식간에 몰입하는 잠. 숙면중에도 문득 눈을 떴다. 몽유병 환자처럼 쫓아나가 커피를 탄다. 창 아래 웅숭거리고 선 나무들. 우듬지에 얹힌 말의 비는 아직도 싹을 깨우지 못했다. 떨어서 어둠 속으로 던져 버릴 수만 있다면. 꽃 무늬가 있는 커피잔을 집게손가락에 끼고는 입맛을 다시며 빙빙 돌린다. 어두운 커피 맛으로 전신이 혼곤하다. 억지로 입안을 헹궈 낼 필요야 없겠지. 습관처럼 중얼거렸다.
말을 하지 않아도 좋잖아. 사방에 널린 소리들이 이리 많은데.













Suzanne Ciani,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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