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지난 겨울

*garden 2011. 2. 22. 16:16




















길 떠나기를 갈망하는 건 왜인가?
어릴 적 심심하면 만지작거리던 생각 하나. 세상 어디엔가 또 다른 내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나를 닮은, 똑같은 나와 어느 때 마주치면 어쩌지. 이내 실소를 머금는다. 나와 내가 만난다는 것도 우습다. 나 아닌, 모르는 이를 보는 게 차라리 나아. 그래서 길을 떠나고서는 부대끼다가 금방 회의에 든다. 왜 나는, 습관적으로 낯섬을 피하고 익숙한 것들과만 마주하는 걸까. 길도 머무는 일도 사람도 음식도 생각마저 틀에 박힌 것을 찾아 여행이라는 걸 의미 없이 채우다니.


너는 누구인가?
익숙해질만하면 떠나려 하다니. 미련스레 붙잡을 수도 없거니와 그런다고 해서 쥐어질 네가 아니기에 놓으련다. 이왕 마음 먹은 것, 머물러 있겠대도 싫어. 곧 싫증 낼 건 뻔하니까. 토라지거나 짜증내며 울고불고하는 짓거리야 직성에 맞지 않아, 끝내는거야. 이번에야말로. 하고서는 지난 너의 시간처럼 오달진 마음가짐으로 버텼는데. 그새 일을 저질렀군. 동쪽 해안지방을 따라 폭설을 퍼부었다기에 궁금했지. 대체 일미터가 넘는 눈은 어떤 의미일까. 뉴스로 전해지는 암담한 소식들. 눈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느껴보려고 애쓴다. 주섬주섬 행장을 챙긴다. 조만간 지워질지도 모를 겨울의 잔재라도 찾아봐야지. 행복하지 않을 눈밭이라도 좋아. 혹여 챙 넓은 삽이라도 들어 거들 요량이라도 가진다면.


휴일 오후면 으레 차출하던 성가신 군 내무반의 사역. 당연히 일어서는 졸병이라면 기특하다. 허나 요리조리 빠질 궁리만 하는 녀석이라면 앞날도 뻔해. 봐라. 미로면 활기리에서 준경묘까지 북적대는 군상들. 이맘때 찾는 이 드물지라도 눈밭에 길을 내는 장한 손들. 건강한 땀이 솟고 거친 숨이 씩씩댄다. 비로소 날이 풀렸다. 동원하기 쉬운 집단이라 불러낸 건가. 예전처럼 막무가내식으로 부리지야 않겠지. 갇힌 곳에서 웅크리고 견뎌야 하는 젊음이라면 안타깝다. 하지만 그리던 바깥 공기라도 맡으며 움츠린 영혼을 펼쳐 아무렇지 않게 햇빛이라도 쪼일 수 있다면 그건 행복한 일이다. 인솔장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찬사라도 보내고 싶어서.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허공에 길을 내며 오른 잘생긴 황장목들을 우러러 보았다. 장한 기상이라도 닮아야지. 읊조린 품새에서 읽혀지는 장한 시간들. 오래도록 서 있었다. 그새 참지 못하고 머리에 인 눈을 터는 나무도 보았다.
양지바른 곳에서 볕바라기라도 하고픈 시간. 가던 걸음을 멈추고 지난 길을 되돌아 보았다. 꾸역꾸역 가야 할지라도 더러는 나를 불러내 마주 앉아야지.

























Zola Van, River To River Trail; The H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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