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PGA투어 최다 상금이 걸린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최경주가 역전 우승했다. 새벽 시간 마음졸이며 지켜보던 우리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앞다퉈 이를 톱뉴스로 다루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상금도 상금이려니와 제5의 메이저로 꼽는 이 대회 우승컵을 품에 안은 최경주는 2008년 1월 소니 오픈 이후 장장 3년 4개월만의 감격적인 우승이라 한다. 본인은 물론 고향인 완도 주민들도 기뻐하며, 지역 위상을 드높인 최경주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고 한다. 반면에 일각에서는 찬물을 끼얹는 뉴스도 있다.
미국 스포츠 전문 채널인 ESPN은 마흔세 살의 최경주와 함께 플레이오프를 벌인 마흔네 살의 데이비드 톰스를 겨냥해 '시니어 무대에서나 뛰어야 할 구세대 선수들'이라고 폄하했다. 최경주와 톰스에 이어 3위를 차지한 폴 고이도스마저 마흔여섯 살이어서 톱3가 모두 40대라는 게 골프 발전에 심각한 저해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당위성 여부야 제쳐두고 받아들이는 건 각자의 몫이다. 꼭 최경주의 고향 사람 아니어도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ESPN이라는 채널에 대하여 화를 낼 법하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대체 어떤 작자야, 어떤 저의로 그딴 기사를 썼는가. 한편으로는 최경주만을 지칭한 게 아니기에 무덤덤하게 넘기려고 귀를 막을지도 모른다. 나이 든 해리슨 포드나 멜 깁슨, 찰톤 헤스톤 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액션영화가 판을 친다면 이도 문제가 있다. 허나 영화와 골프의 단순비교가 가당키나 할까.
어느 대선에 임박해서는 동료끼리 술판을 뒤엎으며 활극을 벌인 적도 있다. 말이 간단하지, 백 선생파와 김 선생파로 나뉘어서는 사뭇 살벌했다. 지난 다음 툴툴 털며 웃을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운데서 이를 중재한 나만 머쓱해졌다. 그들은 싸운 상대방보다 내게 더욱 섭섭하다고 한다. 중간에서 나라도 자기 손을 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길래 의아하다. 편의대로 생각하는 것도 유분수이지, 양식이 있다고 여겼는데 실망스럽다. 자기가 추종하는 신념을 좇는 것을 거부한다고 적으로 간주한다면 이 땅에 함께 서있을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이기적인 치들이 싫다. 아량이나 포용으로 드러나는 것말고 속사정이 있다는 걸 헤아리려 들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우습다. 내색치 않지만 사실은 내게 화가 나 견디기 어렵다. 나야말로 화를 표출하지 않고 묵묵히 견딘 시간을 곱씹을 때마다 마음 한곳에 소용돌이 치는 울화로 미칠 지경이었다. 이 화를 어찌 할 건가.
도대체 화火를 내는 건 왜인가.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과정인가. 아니면 고집이나 성질대로 행하는 수단인가. 화를 참지 못하는 원인 중에는 성급함도 한몫을 한다. 제발 화를 내지 말자고 다짐한다. 헌데 정작 화를 내야 할 자리에서는 눌러 참으며, 집 식구들에게는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 화쟁이로 인식하게끔 되었으니. 주변 일에 관여하지 않고 방관자처럼 냉정함을 견지하려는 내가 마뜩치 못하기도 하다. 마음에 이는 격한 감정을 억누른 채 화를 참지 못해 판단을 그르칠까만을 염려한다면 이는 제대로 된 심보인가. 화와 맞서는 역사 헤라클레스를 보며 여신 아테네가, 두면 작아지지만 낼수록 커지는 법이라며 참으면 금방 잊혀지는 것이 마음속 화라고 했다지만 그렇게 성인군자처럼 살고 싶지 않으니.
Nathalie Fisher, Fin D'un Reve